▼극한 유혹 뿌리친 오디세우스▼
정치인들 중에서도 특히 대통령에게는 더 많은 자질과 품성을 기대하고 있다. 탁월한 지도력과 도덕성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인격적 품성이 그 정권과 그 나라의 실체를 드러내 주기도 한다. 대통령의 지도력은 정치적 지략과 술수에서가 아니라 그의 인간됨에서 나온다. 우리는 아직도 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 얼굴’에서처럼 그토록 훌륭해 존경받을 만한 대통령을 기다려 오기만 했다.
1996년 필자는 독일 친구와 함께 체코의 프라하를 방문했다. 대통령궁 앞 광장 옆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차를 한 잔하기로 했다. 카페 주인이 안내한 작은 방에서 우리는 우연히도 창가에 앉아서 어떤 사람과 이야기에 열중해 있는 하벨 대통령을 만났다. 그와 사진을 한 장 찍기도 했다. 그는 겨우 경호원 두 사람만 대동하고 있었다. 교통통제나 삼엄한 경계도, 빨간 불을 휘젓고 다니는 경호차도 보이지 않았다. 신생 체코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많은 신변의 위협을 받았으리라 짐작되지만 그에 대한 경호는 너무 소박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자유롭게 만든 것일까. 정말 멋있는 대통령을 만나고 동시에 멋있는 체코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를 오늘의 정치 현실에 옮겨 놓고 그에게서 진정한 정치지도자의 모습을 찾아본다. 이타카의 군주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성을 함락시키고 칼립소 섬에서 머물다가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간다. 그와 함께 했던 동지들과 선원들은 파란만장한 위험을 겪어야 했다. 그 위험의 절정에서 오디세우스는 죽음을 부르는 요정 사이렌(세이레네스)을 만나게 된다. 거기를 지나가는 배에서 누구든 사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기만 하면 그 유혹에 빠져 죽고 만다. 여신 키르케의 충고로 오디세우스는 동지들과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봉하고 자신만 귀를 열어두었다. 다만 그의 손과 발은 돛대 밑에 꽁꽁 매여 있어야 했다. 만약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즐기려고 밧줄을 풀어달라고 간청한다면 선원들은 오디세우스를 더욱 칭칭 묶어 놓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권고를 충실하게 따랐다. 밀랍으로 귀를 봉한 선원들은 열심히 노를 저어서 그 위험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마지막에 사이렌의 유혹적인 노래를 참지 못하고 동지들에게 자신을 풀어줄 것을 애원하기도 하고 명령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오디세우스를 전보다 더 세게 묶었다. 일행은 사이렌의 유혹에서 벗어나 고향 이타카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군림할 것인가 봉사할 것인가▼
오디세우스는 지도자의 모범을 보이듯 자기와 동지들의 관리에 철저했다. 오디세우스는 자기 내적인 욕구와 외적인 유혹에 대한 처절한 결단을 실행했다. 그것은 자신의 유약해짐을 예감하고 유혹에 빠질 위험에서는 자기를 더 강하게 묶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독일 철학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사이렌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이 결단은 자신의 신체를 절단하고 불구로 만드는 무서운 결단이라고 풀이한다. 오디세우스는 뼈를 깎는 고통, 불구가 되는 아픔을 견디어 냈다. 이것은 정치 지도자의 자기제한과 절제를 의미한다.
인간이라면 즐김과 누림, 군림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정치인, 특히 대통령은 선택된 사람이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와 같은 각오로 살아야 할 사람이다. 누리고 즐기고 지배하고 군림하기 위한 대통령이 아니라 희생하고 봉사하고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것을 사명으로 삼는, 존경받는 대통령이 나타나기를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박순영 연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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