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경제부총리의 ´색깔´ 발언

  • 입력 2002년 10월 25일 18시 19분


전윤철(田允喆)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발끈했다. 2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여성경영자총협회 초청강연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전 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이 ‘한국은 한줄기 밝은 빛’이라고 칭찬해 외국에 나가면 뻐기고 다닐 수 있어 기분이 좋다”면서 “그런데 한국에만 들어오면 국회에서 벌을 받고 우울한 이야기만 듣는다”고 불평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들어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 “일부 교수들이 현재 경제상태를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고 비판한다”며 ‘색깔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몰아붙였다. 전 부총리의 이날 ‘색깔’ 운운 발언은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경제정책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제2의 경제위기’ 가능성을 제기하는 일부 경제학자를 염두에 둔 듯했다.

이달 초 서울대와 미국 스탠퍼드대가 공동주최한 국제세미나에서 정운찬(鄭雲燦) 서울대 총장 등은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의 거시지표가 좋아진 것은 구조조정 때문이 아니라 단기적인 재정확대와 근시안적 경제정책에 따른 일시적 회복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조그만 충격이라도 가해지면 경제위기는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해 현 정부가 틈만 나면 자랑하는 ‘외환위기 극복론’에 회의를 표시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일부 색깔이 이상한 교수’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 국책 경제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얼마 전 “한국 경제는 전반적인 안정세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국내외 불안요인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물론 전 부총리가 말한 ‘색깔’이 이데올로기적인 좌익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우리 경제의 진단과 전망을 둘러싸고 다른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팀 수장(首長)’인 고위 경제관료가 자기 생각과 다르고 ‘업적’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색깔이 이상하다”며 극언(極言)을 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현 정권의 문제점으로 자주 지적된 독선과 아집의 냄새가 누구보다 균형감각이 요구되는 경제부총리의 발언에 흠씬 묻어나 있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김광현기자 경제부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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