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숨지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의 직접 사인(死因)은 분명치 않다.
일부 의사는 이들이 며칠 동안 게임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심신이 극도로 피곤해서 ‘과로사’ 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의사들은 오랫동안 고정된 자세로 있으면 혈액이 한 곳에서 덩어리로 뭉쳐 돌아다니다가 허파의 혈관을 막아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이들이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즉 항공여행자들에게 많이 생기는 ‘이코노믹 증후군’과 비슷한 이유로 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 사인의 뿌리에 온라인 게임 중독이라는 원인이 똬리 틀고 있음은 분명하다.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온라인 게임의 해독성을 놓고 사회 전체가 벌컥 뒤집히겠지만 국내에서는 조용하기만 하다. 보통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고 일부 게임 중독자에게만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전문가들은 유저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며 게임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게임 평론가 김승규씨는 본보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젊은 층이 게임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것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라면서 “책과 음악도 심하게 빠지면 문제가 생기듯 게임도 지나치게 몰두하면 부작용이 생기는데 이것을 문제삼으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그럴까? 많은 의학자들은 다르게 말한다.
의학자들은 자신의 의지를 완벽히 조절해서 행동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며 뇌는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물론 오로지 게임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컴퓨터에 중독되거나 영향을 많이 받는 정도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1999년 한국정신병리진단분류학회와 동아일보사가 인터넷 사용자 9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인터넷 중독자들은 특히 게임과 채팅을 즐기며 이미 강박관념이나 충동성 등의 문제가 있다가 이들 증세가 인터넷 때문에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고교 2년생 성모군. 17일 충북 청주시의 한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컴퓨터 앞에서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 지난달 10일. 인천의 한 PC방 화장실에서 며칠 동안 게임에만 매달린 박모씨(30)가 숨져 있는 것을 동생이 발견. 올해 부산과 안동 등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신민섭 교수는 “인터넷 때문에 정신적 문제가 생겼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가 인터넷에 빠져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 비행청소년 중 시너나 본드 등 약물에 중독되는 경우는 줄어드는 대신 컴퓨터 중독 때문에 PC방에 가려고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 “이들은 컴퓨터에 중독되지 않았다면 약물에 중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폭력성의 경우 2000년 미국심리학회는 폭력이 난무하는 게임에 단기간 노출되는 것보다 기존의 폭력성이 더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폭력게임이 괜찮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장기적으로 폭력 게임에 노출되면 폭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1999년 미국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은 범인이 평소 폭력 게임에 심취했다면서 게임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드라마 ‘야인시대’, 영화 ‘친구’ 등이 폭발적 인기를 얻는 등 폭력이 영웅시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이 어린이의 폭력성을 더욱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경우 폐해는 이외에도 많다.
우울증, 대인기피증, 운동부족으로 인한 건강악화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아이들은 학교 생활, 어른들은 직장 생활에 지장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가족과 불화를 겪는 사람도 적지 않다.
따라서 가급적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이용해야 하며 통제가 안 되면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받는 게 좋다.
최근에는 인터넷 및 게임 중독을 상담하는 사이트도 늘고 있다. 온라인 게임 중독을 방치했다가는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도움말〓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홍성도 교수,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이충헌 교수, 인제대 의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손창호 교수)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폭력-음란게임 피하고 규칙적 생활로 예방▼
온라인 게임도 적절히 즐기면 생활의 윤활유가 된다.
그러나 중독 성향이 있는 사람은 가급적 게임을 피하는 것이 좋다. 대체로 △심각한 정서적 문제가 있는 사람 △알코올 약물 등에 중독된 경험이 있는 사람 △자신의 성격이나 처지에 불만이 사람 등이 이에 해당된다.
보통 사람은 게임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우선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 컴퓨터는 가급적 침실이나 아이들 방보다는 거실과 같은 공유공간에 놓도록 한다.
특히 부모가 자녀의 중독을 예방하려면 평소 박물관, 공연장 등을 함께 찾아 오프라인 세계에 대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 컴퓨터의 사용 용도를 친구와 e메일 주고받기, 일기쓰기 등 다양하게 활용하도록 지도한다.
게임은 자신 만의 놀이터를 운영하며 색다른 놀이기구를 만드는 ‘롤러코스터 타이쿤’, 자신의 딸을 공주로 키우는 ‘프린시스 메이커’ 등 폭력과 음란성이 적은 것을 추천한다.
자신이 중독이라고 느껴지면 △컴퓨터 이용 시간을 미리 정하고 △가족끼리 외식이나 여행을 자주 하며 △얼굴을 맞대는 모임에 적극 참여한다. 또 신문이나 잡지 만화 등 종이매체를 자주 보는 것도 좋다. 1주일 이상 시도해서 고쳐지지 않으면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