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북한이 핵 문제를 해결하면 APEC의 일원으로 참여해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내용의 특별성명도 채택했다.
세계는 앞으로 북한 정권이 과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주목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은 그런 ‘기회’를 수없이 놓쳐왔다.
2000년 9월 북한의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미 국적 항공기를 타다가 지나친 보안검색에 반발해 방미를 취소해버렸다. 그의 결정이 북한의 자존심은 살려줬는지 모르지만, 그해 7월 첫 북-미 외무장관회담 이후 급물살을 타던 양국 관계의 진전은 한 달 이상 늦어졌다.
이정빈(李廷彬) 전 외교부장관은 지난해 3월 퇴임 후 기자와 만나 “김 위원장의 방미만 성사됐으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북도 조기에 실현될 수 있었다”며 “북은 대미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역설적이지만, 9·11 테러도 북한에는 또 한 차례의 기회일 수 있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테러 이틀후인 13일 “15∼18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북 공동 명의의 ‘반테러 선언’을 채택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이번 기회를 테러지원국의 오명을 벗는 기회로 적극 활용하라’고 보낸 메시지였다. 그러나 북측은 이를 외면했고, 미국은 올 1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북한이 이처럼 결정적인 타이밍을 자꾸 놓치자 정부내 햇볕론자들조차도 “북한은 꾀를 써도 꼭 ‘죽을 꾀’만 쓴다”고 한탄하곤 한다. 2002년 10월, 햇볕론자들은 “이번에도 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죽는 꾀’가 되고 말텐데…”라며 북한의 태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APEC 정상회의와 한미일 정상회담은 북한의 93, 94년식 벼랑끝외교가 통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부형권기자 정치부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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