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여고 3학년인 정선아(18).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로 무대를 옮겨 뮤지컬로 재구성한 작품. 정선아는 최근 오디션을 통해
50대 1의 경쟁을 뚫고 ‘3대(代) 미미’가 됐다. 미미는 2000년 초연과 지난해 공연 때 뮤지컬 스타 최정원(33)이 맡았던 배역.
‘후배 미미’가 연습중인 서울 예술의 전당 지하 연습실을 25일 ‘선배 미미’가 찾았다. 》
#지하 연습장에서
2년전인 고1 때, ‘렌트’에서 ‘미미’역의 최정원을 보고 뮤지컬 스타의 꿈을 키웠다는 정선아. 최정원이 연습실에 들어섰을 때, 정선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정〓‘아웃 투나잇(Out Tonight)’ 노래에 맞춰서 춤을 연습하고 있는데 잘 안되요.
최〓(까마득한 후배의 우는 모습이 귀여운 듯 웃으며) 그건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래. 다들 기대를 걸고 있는데 내가 그만큼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정〓맞아요!
최〓이렇게 생각해봐. 남을 의식하지 말고, 그냥 어제 못했던 스텝을 하나 더 배운다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어제보다 나은 선아가 돼 있을 거야. 내 안에 없던 것이 갑자기 나오진 않아. 지금 갖고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해 선아만의 미미를 보여주렴.
두 사람에게 미미는 소중한 역이다. 최정원은 “미미는 ‘제2의 뮤지컬 인생’을 시작하게 해줬다”고 말했다.
최〓출산 후에 선 첫 무대에서 맡은 역이 미미였어. 미미역을 잘 해내면서 자신감을 회복했거든.
정〓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제가 가장 하고 싶었던 역이 미미였어요. 하지만 선배님의 미미만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미숙한 점이 많지만 미미의 나이(19세)와 비슷한 만큼 풋풋한 느낌을 살려보고 싶어요.
#고3때 데뷔 닮은 꼴
두 사람 모두 고3 시절 뮤지컬 배우가 됐다. 최정원은 87년 롯데월드 뮤지컬부 오디션에 붙은 뒤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정선아는 다음달 수능 시험을 본다.
정〓오디션에 붙고 나서 엄마가 수능 준비 때문에 걱정하셨어요. 하지만 ‘이번에 미미 역을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설득했더니 허락해주셨죠.”
최〓내가 선아라면 시간을 좀 더 쪼개서 친구나 가족들에게 더 잘해 주고 싶어. 언니는 선아만할 때 연습에만 빠져서 친구를 챙기지 않았어. 그래서 그 시절 친구들이 없거든.
데뷔작에서 주인공을 따냈지만 정선아가 갈길은 아직 멀다. 미미역은 가수 소냐와 더블 캐스팅이다. ‘렌트’의 제작사인 신시측은 “연습 과정에서 좀 더 나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더 자주 무대에 서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더니 정선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씩씩하게 외쳤다. “반드시 제가 더 자주 서 보이겠습니다!”
#아웃 투나잇
선배 미미가 “노래를 한번 들어보고 싶다”고 청했다. 옆방 연습실에 가자 마침 같이 캐스팅된 소냐가 노래와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능숙한 소냐의 춤을 본 선아는 긴장된 얼굴로 “전 노래만 부를께요”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아웃 투나잇’을 부르면서 춤도 함께 췄다. 말할 때 약간 허스키하던 목소리였지만 노래를 부르자 깨끗하고 힘이 넘쳤다.
후배의 노래에 박자를 맞추던 최정원이 “잘 하는데, 뭘” 하며 웃었다.
사진 촬영. 후배가 사진에 익숙치 않은 듯하자 최정원이 몰래 선아의 등을 간지럽히며 자연스러운 웃음을 이끌어 내줬다. 대학로에서 일부러 달려와 준 선배에 대한 후배의 인사말은 10대 소녀다웠다.
“선배님, 제가요, 성공해서 돈 많이 벌면 맛있는거 꼭 사드릴께요!”
‘렌트’는 12월 6일부터 한달간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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