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낮 자유의 집 부근 문래공원 앞.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귀가하는 길에서 노숙자 2명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술자리를 벌이고 있었다. 얼굴이 벌개 진 한 노숙자가 학생들을 가로막자 아이들은 급히 이들을 피해 종종걸음을 쳤다.
자유의 집 근처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김모씨(42)는 “술 취한 노숙자들이 소리를 지르고 길에 오줌을 누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며 “상점 안으로 들어와 추태를 부려 난감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628명의 노숙자를 보호하고 있는 자유의 집은 서울시가 1999년 초 ¤방림으로부터 무상으로 임대 받았지만 2000년 6월 임대계약이 끝나 지금은 아무런 근거 없이 사용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자유의 집 인근 문래 1, 2동과 당산동 주민 1만4000여명은 4월 ‘자유의 집 이전 및 사회복지시설 저지 주민대책위원회’(위원장 김종식·金宗植)를 만들어 영등포구와 서울시에 즉각적인 시설 폐쇄와 이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전 현직 서울시장단이 연말까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무 선에서는 조금도 진척된 게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관할 구청인 영등포구도 9월 초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이 구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자유의 집 이전을 공식 요청해 긍정적인 답을 받아냈다. 지난주에는 ‘시장의 약속을 적극 추진해달라’는 내용의 촉구 공문을 시에 보내기도 했다.
영등포구 최창제(崔昌濟) 사회복지과장은 “자유의 집 노숙자를 포함해 서울시 전체 노숙자의 36% 가량인 980여명이 영등포구에 있어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며 “노숙자들을 소규모로 분산 수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방림에게서 땅을 사들인 건설업체 ¤집과사람들과 유상임대 협상을 벌이는 한편 대체 부지 마련을 모색하고 있으나 어느 것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집과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시설을 서울시에 임대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최근 주민대책위원회에 써준 데다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는 곳마다 혐오시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이렇다 할 대안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다른 대형 노숙자시설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한 지, 분산 수용하는 방안이 좋은 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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