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이번 예산에서는 선거 공약을 마무리하려는 현 정부의 조바심이 곳곳에서 읽힌다. 건전 재정 정착, 생산적 복지 구축, 공무원의 보수 현실화, 기금 개혁, 통일기반의 구축 등 각종 약속이 모양을 갖추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다.
▼선심성 증액 피해는 국민에게▼
그러나 그 속에는 모순된 주장이 얽혀 있기도 하다. 건전 재정을 위해 일반회계에서 발행하던 국채 1조9000억원은 중단됐지만 그만큼의 부족분은 한은 잉여금을 앞당겨 사용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을 감축했는데도 보수 현실화라는 딜레마로 인해 인건비 항목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발행했던 공적자금을 국공채로 전환하는 원년이 된다. 공적자금 상환계획에 따르면 국채로 전환하는 49조원을 갚기 위해 2003년 14조7000억원 등 2011년까지 국채를 발행하도록 되어 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부담을 재정위기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재원이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낭비의 소지가 있는 사업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를 심의하기 위한 국회가 열리고 있지만 문제는 대선 정국의 국회가 온통 차기 정권의 창출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정 기한을 넘겨가면서 예산투쟁을 하던 국회가 올해는 일찌감치 1개월 이상 예산심의 기간 자체를 단축시켜 놓았다. 그런 무관심 속에 특수시책이니 이색사업이니 하면서 부처의 사업들이 ‘끼어들고’ 있다. 그리고 상임위원회에서는 ‘표 몰이’를 위해 사업의 타당성과 관계없이 지역의 현안이라는 이름 하에 선심성 증액으로 일관했다. 16개 상임위의 예비심사 결과 삭감된 곳은 하나도 없고, 최근 5년간 증액률 1.8%의 무려 두 배가 넘는 3.7%가 증가했다. 어차피 예결위에서 조정될 사안이니 인심이나 베풀고 보자는 식이다.
한편 예결위에서는 예산 본래의 논리보다는 정치적 공세로 대선 정국의 샅바 싸움에 관심이 몰려 있다. 상임위와의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예결위원들의 현안을 반영하다 보면 예산은 더 증액될 가능성이 높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다.
민주정치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의회의 예산 심의를 지원하고 견제하기 위한 장치가 발달해 있다. 의회예산국(Congressional Budget Office)은 장기적인 재정 추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뿐 아니라 대통령 전용 비행기의 비용까지 평가하는 자료를 내놓는다. 감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이 의회에 소속해 있어 예산낭비에 대한 감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의원들의 나눠 먹기식 예산분배를 찾아내 관련 의원들의 명단을 발표하는 등 철저히 견제한다.
▼낭비 감시할 견제장치 마련을▼
우리의 경우 예산심의 과정을 지원할 입법 보좌기구가 수적으로 미흡하고, 시민은 예산의 복잡성과 방대함에 질려 아예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심의 과정은 한 나라의 정치발전과 함수 관계에 있다.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통제 수준, 여당과 야당의 합의 능력, 시민의 이익을 배려하는 국가의 의지가 사업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막 민주주의를 경험한 남아프리카와 동유럽에서 예산감시 시민단체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여야 모두 표를 의식해 적당히 사업을 끼워 넣고 싶겠지만, 그렇게 해서 끼워 넣은 사업은 두고두고 재정 부담을 야기하고 국민의 어깨를 짓누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산은 결코 ‘일년 벌어 일년 먹고 사는’ 소비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이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재정을 읽고 이해하는 자만이 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이원희 한경대 교수·행정학·경실련 예산감시위원장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