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산업의 핵심은 내용물인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이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내용물이 담긴 패키지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에 가깝다. 소설이라는 콘텐츠는 종이로 만든 책이라는 패키지에, 음악 콘텐츠는 CD나 카세트 테이프라는 패키지에, 게임은 디스켓이나 CD롬이라는 패키지에 담아 판매하는 것이다.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패키지를 판다는 것이 콘텐츠 제작자에게 무척 불리한 조건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콘텐츠가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에 패키지 제작과 유통이라는 중간 단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패키지 상품에는 더욱 중요한 문제가 숨겨져 있다. 음악 CD의 소비자를 생각해보자.
소비자들은 하나의 음악 CD를 수천 번 반복해서 듣는 ‘헤비 유저(He-avy user)’부터 몇 번밖에 듣지 않는 ‘라이트 유저(Light user)’까지 무척 다양한 행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성향의 소비자건 패키지 상품에 대해 지불하는 가격은 동일하다. 어떤 가격을 책정하건 그 가격이 비싸다고 느끼는 라이트 유저는 절대로 소비자군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콘텐츠의 패키지화는 소비자의 저변 확대를 방해하는 심각한 장애 요소인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이 ‘PPT’라는 개념이다. ‘거래를 할 때마다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쉽게 말하면 음악을 한 번 들을 때마다, 게임을 한 번 할 때마다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패키지가 ‘정액제’라면 PPT는 ‘종량제’인 것이다. PPT는 아주 오래 전부터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연구돼 왔지만 단 한 번도 구체화되지 못했다. 패키지 이외의 방법으로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속도가 좀 더 빨라진다면 인터넷은 콘텐츠를 패키지에서 해방시켜 PPT를 성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를 다운받는 방식은 패키지를 판매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영상물처럼 데이터 용량이 큰 것도 서버에 저장되어 있는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소비할 때마다 이용료를 받을 수 있다.
PPT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격차별’이고 따라서 ‘소비자 잉여’를 줄이는 행위에 속한다. 하지만 인터넷의 보급 초기처럼 정액제와 종량제를 소비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오히려 소비자의 편익을 증대시키고 콘텐츠 산업의 저변을 확대하는 배급 시스템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김지룡 문화평론가 daogonkj@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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