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법칙만으로 풀려가지 않는 것. 선임자가 들려주는 체험 한마디가 천 권의 참고서적보다 유용할 수 있다. 한국외교협회가 엮은 이 책에는 정부수립 이후 반 세기가 넘는 동안 우리 외교사의 숨은 비화들이 생생하게 실려있다.
최호중 한국외교협회장은 한소수교과정에서 당시 소련 외상이던 셰바르드나제를 압박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교합의 즉시 발효(發效)’를 거부하던 셰바르드나제가 우리측의 완강한 자세에 밀린 듯 갑자기 ‘그렇게 하자’며 합의문서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 날짜를 고쳐 썼다는 것. 홍순영 전 통일부장관은 2001년 미국 정찰기의 중국 하이난섬 불시착사건으로 불편해진 미·중관계에서 우리나라가 해결사로 나선 일화를 전해준다.
38세의 최연소 외무장관 시절을 회고하는 이동원 전 외무부장관, 도고 주미 일본대사와의 인연을 소개하는 권병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유신말기 불편했던 한미관계의 내막을 설명하는 박동진 전 국토통일원장관, 남북외무장관회담과 공동 유엔 결의안 채택 과정을 들려주는 이정빈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일화 등도 사뭇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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