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송금 현대그룹 연루 의혹…대북 비밀지원설 다시 수면위로

  • 입력 2002년 11월 1일 18시 42분


‘과연 대북송금설(說)에 어느 회사까지 연루된 것일까.’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가 현대건설이 중동지역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에 1억달러를 송금한 후 페이퍼컴퍼니를 청산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4000억원 대북송금설이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본보가 1억달러의 송금 경로 및 증발과정을 입증하는 현대전자 영국법인 회계보고서를 단독입수하면서 이 자금의 최종 용도에 더욱 의혹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의 정황을 종합해보면 대북송금설은 현대상선뿐 아니라 현대아산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이 개입돼 결국 현대그룹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진실은 여전히 가려져 있다.

▽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했을까〓기업들은 비자금을 조성할 때 주로 해외 현지법인과의 매입·매출 거래와 해외건설공사를 활용한다.

매매거래는 환전 및 송금업무를 대행하는 외국은행이 끼어 있어 국내 감독당국이나 검찰이 조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해외건설공사 대금 역시 어떤 명목으로 송금됐는지, 실제로 그 용도에 쓰였는지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번처럼 현대전자 영국현지법인(HEU)이 현대건설의 중동지역 페이퍼컴퍼니로 송금한다면 국내에서 이를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금융감독원이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적발할 때처럼 계좌추적과 해외 현지조사가 수반된 특별감리를 벌이면 가능하다.

하이닉스는 1억달러를 빌려준 것처럼 꾸몄다가 손실처리했지만 현대건설은 이를 철저히 숨겼다. 다만 송금 시점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때여서 해외에서 자금세탁을 거쳐 북한으로 송금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공교롭게도 문제의 페이퍼컴퍼니가 ‘9·11테러’ 당일인 2001년 9월11일 청산됐다는 점도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테러발생 직후 미국정부는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자금줄을 조사하겠다고 밝혔으며 현대측에서는 자금 추적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날 서둘러 페이퍼컴퍼니를 청산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누구의 지시로 이뤄졌을까〓2000년 5월에 현대건설은 자금난에 빠졌지만 현대전자는 반도체 호황으로 자금사정이 좋았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은 그해 5월 말부터 현대건설의 국내외 자금흐름을 일주일 단위로 점검했기 때문에 이후에는 현대건설이 돈을 빼돌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는 그해 11월부터 반도체가격이 급격히 떨어지고 단기차입금 상환일정이 다가오자 미국 씨티은행을 주간사로 해 1조원의 신디케이트론을 추진했다.

따라서 현대건설이 채권단의 통제를 받기 직전 하이닉스가 현대건설에 1억달러를 지원하고 건설은 이를 다른 명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2000년 5월에는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가 계열사의 자금흐름을 통제할 때여서 현대전자의 현대건설 송금도 자체 판단보다는 그룹 차원에서 이뤄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현대전자 1억달러 송금과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에는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당사자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당시 하이닉스 사장이었던 박종섭씨는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고 자금담당임원도 회사를 떠나 진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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