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찾은 한택식물원은 멀리서 언뜻 보면 일반 야산과 다를 바 없지만 숲 사이로 한 발만 들여놓으면 형형색색의 풀과 꽃,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찬 식물의 보고(寶庫)로 둔갑한다.
이 곳엔 한국의 수목류 1200여종과 자생화 1200종 등 24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외국종을 포함하면 모두 6000여종이나 된다. 지난해에는 환경부가 민간 식물원으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자생지 외 희귀식물 보전지구’로 지정했다.
이택주(李宅周·62) 원장은 “야생 식물원으로는 국내는 물론 동양 최대 규모”라며 “내년 4월경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곳은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로 꾸며진 국내 대부분의 열대 식물원과는 달리 실외 식물원이다.
2만평 규모의 자생식물원을 비롯해 구절초 층꽃나무 등 절벽에 사는 식물 400여종이 자라는 절벽가든, 바위솔 솜다리 등 해발 2000m 이상에서 자라는 고산식물을 모아놓은 암석원, 창포 연꽃이 자라는 수생식물원이 갖춰져 있다. 여기에 옥잠화 140여종을 모은 비비추원과 모란작약원, 원추리원, 백합원, 고사리원 등 주제별 공간도 마련돼 있다.
비닐하우스 2000평은 식물원 내 식물들을 교배하고 번식시키기 위한 공간. 식물유전자 자원 확보를 위해 이미 한택붓꽃, 겹꽃참나리 등 자생식물 60여종의 품종을 개발했거나 개발중이다.
이런 결실의 밑바탕에는 이 원장이 24년 간 흘린 땀과 남다른 노력이 숨어있다.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설현장을 누비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1979년 고향인 이곳에 정착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축산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조경용 나무들을 키우다가 식물에 매료됐다. 이후 전국을 돌며 자생식물을 찾아 나서 휴전선에서 한라산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없고 암벽에서 굴러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숱하다. 국내는 물론 중국, 티베트, 몽골까지 식물종 확보를 위한 순례는 끊이지 않았다.
외국종자들은 외국 종자회사에 종신회원으로 가입한 뒤 종당 200만∼300만원씩 주고 구입한 것도 많다. 이렇게 모은 것이 어느덧 3000여종을 넘어섰고 들어간 돈만 해도 수억원이나 된다.
이 원장은 “종자주권시대에는 다양한 식물종이 그 나라의 국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며 “그동안 습득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후대에 전할 수 있도록 식물원 연구원을 만드는 게 남은 꿈”이라고 말했다.
용인〓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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