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광옥씨 취하할 소송 왜 했나

  • 입력 2002년 11월 4일 18시 39분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사건과 관련해 엄낙용 전 산업은행총재를 고소해 놓고 뒤늦게 이를 취하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씨는 그동안 검찰에 직접 출두하지 않고 고소대리인을 보내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처신을 해 의혹을 증폭시켜 왔다.

한씨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취지로 고소를 제기했으나 무책임한 정치공방의 소재로 이용되면서 오히려 명예에 상처를 입고 있다’며 소 취하 배경을 설명했으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 같은 정치공방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사건의 핵심은 엄씨가 국정감사에서 “이근영 금감위원장으로부터 ‘청와대 한 실장이 전화를 해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한씨가 압력을 넣었는지 아닌지 직접 검찰에 나가 사실을 밝혀야 했다. 수사를 통해 한씨의 주장처럼 엄씨의 말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그의 명예는 회복되고 어려움에 처한 김대중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도 한결 가벼워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러 이유를 대며 출두를 미루다 이번엔 아예 소송을 취하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처음부터 수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면서 엄씨와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을 압박할 목적으로 고소했던 것은 아닌가. 그리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진실이 밝혀질 경우 정권에 불리한 상황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이제 와서 소 취하를 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한씨는 소를 취하하면서 엄씨의 말이 착오나 정략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지만 소송을 중도 포기함으로써 그의 주장은 신뢰성을 더욱 잃었을 뿐이다.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한씨가 압력전화를 했는지 여부다. 소송에 의한 수사에서라도 그것이 밝혀지기를 기대했던 많은 국민은 한씨의 소 취하에 우롱당한 기분이다. 이것이 대통령비서실장과 여당의 대표까지 지낸 사람의 행동이라면 그 정권과 정당이 새삼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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