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도청방지 1인자 안교승씨

  • 입력 2002년 11월 5일 19시 10분



《세상이 각박하다 보니 모두가 도청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그러나 위험을 알고도 대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 특히 도청의 목적이 산업 기밀이나 회사의 중요한 의사 결정 사항을 빼내기 위한 것이라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한국통신보안㈜ 안교승 대표는 “굳이 고가의 장비가 아니라도 평소에 보안에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도청 위험에 완전히 노출되는 것은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은 안 대표가 소개하는 도청 방지법. 》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실세 장관, 검찰-경찰 수뇌부, 언론사와 대기업 회장, 3부 요인까지…. 모두 한국통신보안㈜ 안교승(安敎昇·40) 대표의 고객들이다.

도청(盜聽)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내 최고의 도청 방지 전문가인 안 대표의 고객도 부쩍 늘었다. 휴대전화 7, 8개를 돌려가며 사용한다는 국회의원에서 공중전화로 업무 지시를 한다는 장관, 휴대전화 비화기를 구입했다는 야당 대통령후보까지…. 요즘 우리 사회 VIP치고 도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그래서 안 대표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다.

페니실린을 공수해 위독한 환자의 생명을 구한 아마추어 무선사들의 얘기를 듣고 ‘전파 마니아’가 됐다는 그는 업계 최고경영자(CEO) 중에서는 드물게 공업고교 출신. 하지만 그는 도청 방지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절대 강자’다. 옷 로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의 수사본부가 차려진 특별검사팀 사무실을 비롯해 남북 정상회담 등 굵직한 주요 행사의 보안 작업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서울에는 비밀이 없다’라는 책을 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에피소드

보안 점검. 즉, 도청장치 유무를 확인해 달라는 의뢰는 매우 은밀하게 이뤄진다. 안 대표의 고객 리스트야 웬만한 유명 음식점 방문객 리스트보다 화려하지만 드러내 놓고 선전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어디를 가거나 ‘특별 대우’죠. 출입 기록을 적지 않고 지하 주차장에서 비상 엘리베이터로 직행합니다. 장비는 포장 이사용 박스에 넣어 옮기고 빌딩 대청소라고 속이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점검 사실이 알려지면 이미 설치된 도청장치를 떼내거나 의뢰인이 곤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재계 서열 30위 내에 드는 한 대기업. 도청 노이로제에 시달리던 회장이 보안 검색을 의뢰했다. 회사 기밀은 물론이고 단 둘이 한 대화까지 샌다는 게 회사측의 하소연. 회장은 지시 내용을 메모로 써서 비서실에 전달하거나 간부 회의도 필담(筆談)으로 진행하던 터였다.

D데이. 안 대표는 회장실이 있는 층 전체를 폐쇄하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자정 무렵부터 정밀 측정에 나섰다. 유선전화의 내부와 선로는 물론 책상과 의자, 소파 심지어 화분 속까지 뒤졌다. 원격제어장치로 작동하는 도청기를 찾아내기 위해 작동하지 않는 도청장치까지 감지하는 ‘하모닉 디텍션’ 작업도 병행했다. 오전 4시. 샹들리에가 달린 집무실 천장에서 소형 무선 발신기를 찾아냈다. 이미 배터리 수명이 끝난 UHF주파수대의 이 장치는 20일간 도청에 이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도청 문제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한국통신보안(주) 안교승 대표다. 그의 고객 중에는 3부 요인도 있고 굴지의 대기업 회장도 있다. 국내 최고의 도청전문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원대연기자

고위 공직자인 경우 접촉은 더 은밀하게 이뤄진다. 현 정부 들어 국무총리를 지낸 한 인사는 ‘007영화’처럼 보안 점검을 의뢰했다. 점검 당일까지도 의뢰인의 신분을 숨긴 총리실은 미리 준비한 차량에 장비와 인력을 싣게 하고 비밀리에 집무실로 인도했다. 점검이 끝난 뒤에는 카펫에 남은 발자국까지 모두 지울 정도로 치밀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정보기관이 총리실에 대해 보안 점검을 막 끝낸 뒤 의뢰가 왔더군요. 서로를 얼마나 못 믿는다는 얘깁니까? 노사 갈등이 심한 어떤 회사는 노측과 사측이 동시에 점검 의뢰를 하기도 했고, 같은 회사의 공동대표가 상대방 승용차에 각각 도청장치를 한 경우도 있었어요.”

예전에는 도청기라고 하면 성냥갑만한 장치를 책상 밑에 붙여놓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마이크 성능이 좋아지면서 책장 위나 소파의 쿠션 속, 화분 안이나 전원 콘센트에 꽂힌 위장된 플러그에서도 도청기가 발견된다. 최근에는 전화 송수화기 코드 속에 도청장치가 내장된 제품도 있고 휴대전화를 무음 상태로 설정한 뒤 감춰놓고 필요한 때 전화를 걸어 도청을 하는 전천후 휴대전화 부가장치도 나왔다.

그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 도청 논란에 대해서도 “장비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하다”는 말로 일축했다.

“미국 CCS라는 회사와 보안 사업을 하면서 꽤 오래 교류해 왔는데 2000년에 ‘CDMA 셀룰러 인터셉트 시스템’이라는 모델을 개발했으니까 세일즈를 해보라는 자료를 보내왔습니다. 가격은 대당 33만5000달러였지요. 그 회사가 없는 장비를 세일즈하겠다고 선전할 회사도 아니고…. 그때 고객들에게 CDMA 도청장비가 개발됐으니 보안에 주의하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 밖에도 안 대표는 영국과 이스라엘 쪽 업체로부터 CDMA 도청장비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와 함께 서울에서 시연회를 하기 위해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히스토리

그는 충남 제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에 전화기가 없어 집집마다 연락용 스피커를 달아놓은 산골 마을이었다. 하지만 그는 중학교 때부터 ‘전자과학’이나 ‘학생과학’ 같은 잡지를 보면서 아마추어 무선사(HAM)에 빠져들었다. 공고 통신과에 진학한 것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도 있었지만 통신을 배우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무선통신의 세계는 오묘했다. 용돈은 모조리 부품을 사는 데 썼다. 서울 청계천과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 고물상을 헤매고 다니며 라디오와 전축 부품을 사들였다. 이미 고교 때 아마추어 무선용 무전기를 만들어 체신부장관 허가를 받았다. 무전국을 개국해 운영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무선통신에 뛰어든 것은 1990년. 대우통신을 그만두고 생활 무전기 제조업체인 레디오텍을 설립하면서부터다. 19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터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은 도청 방지 산업에 눈을 뜨게 했다.

“도청 문제로 온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보면서 이 분야가 장래성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관련된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없어 힘들었지만 무선 원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뛰어들었죠.”

외국 서적을 읽고 해외 기업을 찾아다니며 관련 기술을 익힌 그는 1996년에 처음으로 장비를 개발했다. 주변에 도청장치가 있으면 2초 이내에 확인이 가능한 ‘도청 신호 수신기’. 여행용 가방에 장비를 설치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첫 고객은 재계 랭킹 5위권의 대기업과 굴지의 은행.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이 하나둘 고객 리스트에 추가됐다.

그동안 그가 개발한 도청 방지 장비는 여러 개가 있지만 도청용 무선 전파가 잡히면 경보를 해주는 RM-7, 경찰 무전망이나 산업통신망 전파를 걸러내고 도청 신호만 잡아내는 기능을 갖춘 RNG-3000, 레이저 도청 방지 기능과 원격관제 기능을 갖춘 R5000 등이 대표적이다.

“고객은 500개 업체 정도 되는데 대부분 대기업입니다. 개인 고객은 받지 않지만 극소수 VIP들은 관리를 합니다. 도청 방지 시장 규모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연 500억원 규모는 되는데 요즘 같은 추세라면 점점 더 커지겠죠.”

●라이프

그는 요즘의 도청 공포증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클라이언트가 늘어나는 게 좋을 법도 하건만 표정이 밝지 않다.

“의료 분쟁에 휘말린 한 의사가 누군가 자신을 도청하고 미행한다며 잠바 안에 방탄복을 입고 다녀요. 어떤 신혼 부부는 도청을 당한다며 집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천장과 벽을 향해 함께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붓지요. 집을 비우면 누군가 도청기나 몰래 카메라를 설치할까 봐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게 정상은 아니잖아요.”

장래 포부를 묻자 한참 생각한 끝에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앞으로 5년간은 이 분야에 매달리겠지만 그 후에는 새로운 일을 찾겠다는 것이다. 엿듣는 사람과 이를 막으려는 사람 사이…. 숨막히는 작업이 지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업에 대해 회의하느냐고 물었다.

“회의까지는 아니고요…. 돌이켜보면 어려운 일만 찾아 해 온 것 같아요. 늘 새로운 일을 찾아 도전을 했고요. 앞으로 5년 정도면 충분하죠.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전혀 다른 길을 찾아 떠날 거예요. 그게 인생이죠.”

▼안교승 대표▼

▶1962년 충북 제천 출생 ▶1982년 부천공고 통신과 졸업 ▶1982년 대우통신 입사, 통신연구소 근무 ▶1990년 레디오텍 설립(생활용 무전기 제조업체) ▶1996년 한국통신보안으로 회사명을 바꿈, 도청신호수신기 개발 ▶1997년 RM-7(무선신호포착장비) 개발(실용신안) ▶1999년 RNG-3000(레이저도청방지장비) 개발(″) ▶2002년 R5000(유무선레이저도청방지장비) 개발(″) ▶2002년 ‘서울에는 비밀이 없다-지금은 도청중’ 출간

▼안교승씨가 말하는 도청방지법▼

△전망좋은 유리창이 있는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지 말 것→레이저도청기로 손쉽게 도청할 수 있다.

△시계나 계산기 등의 선물은 주의할 것→고전적인 수법이지만 축하 화분이나 시계, 계산기 등의 선물에 도청장치가 설치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건물 전체 통신시설에 대한 주기적인 전문가 상담→기본적인 통신시설 점검을 하지 않아 낭패를 당하는 회사가 많다.

△교환기 시스템을 바꿀 때는 반드시 디지털 방식으로→집단 전화 시스템과 적절한 망을 구성하면 보안성이 두 배로 좋아진다.

△중요한 대화는 전화로 하지 말것. 대화를 할 때 가벼운 음악을 틀어 놓을 것→휴대전화나 유선전화 모두 도청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실내 음악은 도청 교란 효과가 있다.

△기업이라면 비 주기적으로 전화 선로를 교체할 것.

△신축 빌딩으로 이전하거나 실내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출입자 관리는 필수→최근에는 건물 신축 당시부터 도청 장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직통전화보다 구내 전화(집단 전화)를 사용할 것→통상 9번을 누르고 사용하는 집단 전화에 대한 도청이 훨씬 힘들기 때문. 키폰을 사용할 경우 전화기에 대한 재 프로그램 입력 작업은 반드시 해야 한다.

인터뷰=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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