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확보 급급한 매스컴▼
현대 민주사회에서 치러지는 선거와 시민권 확립에 있어 신문의 역할은 컸다. 하지만 신문은 비교적 값이 비싼데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해주지 못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소식을 접할 수 있다는 약점을 지녔다. 그러다 전화와 라디오,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매스컴은 또 다른 변화를 맞게 됐다.
인쇄매체와 영상매체가 공존하는, 더욱 다양한 환경이 형성됐고 전문적이고 정확한 보도 기준이 성립되는 듯 했다. 대중은 질적으로 향상된 정보와 뉴스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언론이 전문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에 맞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할 만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방송사들의 민영화다. 유럽에서 이 같은 상황이 두드러진다. 공익방송으로 공공을 위해 운영됐던 방송사들이 이제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생존해 있는 공영방송사들도 민영방송사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프로그램의 질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자주 생기고 있다. 이는 질적인 측면에서 분명히 퇴보한 것이다.
둘째, 새로운 위성방송과 케이블 TV,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성향의 독자(시청자)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기호가 세분화하는 만큼 독자들의 수요는 분산되고, 그 결과 매스컴의 수입도 줄게 됐다. 따라서 매스컴은 높은 시청률을 확보하는 데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것은 매우 위험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셋째, 인터넷 매체를 사용하는 이들이 늘면서 수많은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만큼 이 정보들이 정확하고 진실한 내용들인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정보 브로커들이 정보를 질에 따라 선별해 준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아직은 활성화되고 있지는 못하다.
네 번째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점차 밀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서로의 이익을 충족시켜 준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기자들에게 주는 대신 자신들을 부각시키고 목소리를 국민 전체에게 전달시키기 위해 이들을 이용한다. 정작 중요한 민생안정이나 복잡한 정치적 이슈 등에 대해 대중의 이해를 도모하는 일 등은 자연히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이 같은 요인들은 이미 대중과 민주주의 체제에 적잖은 타격을 주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우려할 만한 또 다른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각종 집단이 자신들의 목적과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영상미디어를 도구로 활용하는 현상, 즉 ‘미디어 도구화(instrumentalization of the media)’다.
이들은 언론의 조명을 받기 위해 더욱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런 방법이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언론의 속성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9·11테러가 그러한 예다.
▼미디어 관심이 폭력 더 극단화▼
자극적이며 폭력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9·11테러는 그 어느 뉴스보다 중요하고, 심지어 다른 모든 뉴스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긴급뉴스(breaking news)’였다.
모스크바 극장의 체첸 인질극도 그렇다. TV를 통해 보도되는 극단적인 이미지는 이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했던 체첸과 러시아의 갈등에 대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대적인 ‘긴급뉴스’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그 목적을 달성하고 싶어하는 각종 집단은 언론 매체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무역센터 테러 현장의 참혹한 모습과 모스크바 인질극 진압 직후 여기저기 널려 있는 체첸 여성 반군들의 시신과 같은 이미지는 대중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잊혀지지 않는다.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또 이를 시시각각 긴급뉴스로 보도하는 매스컴. 그 질긴 연계 고리와 사슬을 끊어버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막스 카스 세계정치학회 수석 부회장·독일 브레멘대 인문사회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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