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주무부처인 기획예산처 및 20여개 정부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 100명이 넘는 예산담당자들이 서류 보따리를 들고 회의장 앞에 대기하면서 예산 따내기에 열중하고 있다. 사정이 다급하다 보니 이들은 예산 로비의 현장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한 광역시 관계자는 4일 회의장 옆방에서 민주당 중진의원을 만나 도로공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회출입증을 단 기자들이 다가가 대화 내용을 메모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에만 열중했다. 개혁적 이미지로 잘 알려진 어느 한나라당 의원은 회의장 출입이 제한되자 동료의원을 불러내 자기 지역구 사업 49억원 증액을 요구하는 자료를 건넸다.
6일엔 한 소위위원에게 밀려든 민원 쪽지만 68건에 이르고, 이를 모두 반영하려면 1087억원을 증액해야 한다는 문건이 공개돼 ‘막판 로비’의 규모를 실감케 했다.
언론에서 밀실 심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연일 보도했지만 정작 국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 의원은 오히려 “지역구 의원은 지역사업 예산을 따내는 일을 하는 자리”라고 항변했다. 당에 따라 정쟁(政爭)을 일삼던 의원들도 예산심의 때만큼은 지역구 예산 챙기기를 서로 묵인하고 있다. ‘의원들의 고민이라면 봐줘야 할 민원은 넘쳐나지만 예산은 충분치 않다는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회의장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예산 전문가들은 국회가 계수조정소위 비공개를 고집하는 것도 봐주기 예산편성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의원들은 오히려 “이익단체의 전화압력이나 사무실 앞 시위 등에 위축되지 않고 소신 있게 삭감하려면 비공개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회의장 밖에서 만난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우선 순위에 밀리는 사업이 끼어 들면 정상적으로 집행해야 할 사업이 밀려 결국 ‘예산 왜곡현상’이 빚어진다”고 말했다. 수년째 예산심의 과정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2년 전 ‘결국 불쌍한 것은 국민뿐’이라며 예결위 회의장을 떠난 한 의원의 말이 오늘의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김승련 정치부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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