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중심으로 ‘만화 대여점이 주범’이라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아무리 인기 있는 만화라도 대여점수만큼만 팔리고 끝난다는 것이다.
대여점이 만화산업을 위축시킨 주범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베스트셀러의 판매량을 줄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여점에서 기본 부수를 소화해주기 때문에 세상의 빛을 보는 만화도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대여점을 없앨 수 있는 법적인 근거도 희박하다. 오히려 전국의 주택가마다 하나씩 있는 대여점을 산업적으로 잘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만화산업의 재도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화산업의 주된 이해관계자는 만화가 출판사 대여점 그리고 독자다. 지난주에 얘기했던 ‘PPT(Pay Per Trade)’, 즉 ‘거래를 할 때마다 돈을 지불하는 방식’을 활용하면 모든 이해 관계자에게 만족을 주는 새로운 시스템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만화 출판사는 대여점에 만화를 공짜로 배부한다. 그리고 대여가 발생할 때마다 대여료를 만화가 출판사 대여점이 일정한 비율로 분배한다. 대여점과 출판사는 투자의 위험을 줄일 수 있고 만화가와 출판사는 대여가 일어날 때마다 이익을 분배받을 수 있고 독자는 현재와 같이 저렴한 가격으로 만화를 즐길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비디오 대여점에도 응용할 수 있을뿐더러 소프트웨어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 대여점에서 소프트웨어를 빌려 PC에 설치한 후 돌려주는 방식이다. 소프트웨어 제작자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 사용자의 대부분이 불법 복사물만 사용한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대여점을 통해 PPT 거래를 실행하는 데는 거대한 장애가 존재한다. 과연 대여점이 모든 거래를 성실하게 신고할 것인가? 대여 횟수를 줄여서 신고하는 이기적 행동을 감시하고 방지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힌트는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널드 코스’의 ‘거래비용’ 이론이다. 거대 자본이 모든 대여점을 직영하는 형태로 거래를 내부화하면 감시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하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지적이다. 그는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중략)…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신뢰 수준이 높아진다면 기존의 대여점 구조로도 PPT 거래를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어쩐지 훨씬 요원해 보인다.
김지룡 문화평론가 dragonkj@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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