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102년 11월. 바닷가에 선 미국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색바랜 사진을 내보이며 “저기 수평선 언저리에서 내 할머니가 선탠을 했었다”고 설명한다. 바닷물의 수위가 상승한 탓에 북아메리카는 2만㎢(남한면적의 5분의 1) 가량의 땅을 잃었다. 유럽의 알프스에서도 만년설이란 마터호른이나 융프라우봉 등 높은 꼭대기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가능한 시나리오중의 하나일 뿐이다. 탄소 배출량의 증가와 오존층 파괴 등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이제 우리 귀에 낯설지 않은 주제가 됐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이라면, 오히려 각각의 기후요인이 지구에 미치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영향을 설명함으로써 섣부른 예측과 단언을 피하는 데 있다.
예컨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나면 대기권이 흡수하는 적외선의 양이 증가한다. 수분의 증발이 빨라지고 따라서 대기 중의 수증기 양이 늘어난다. 수증기는 온실 효과를 일으키므로 기온이 올라간다. 구름의 양도 늘어난다. 그런데 구름은 고도에 따라 기온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한다. 이런 식의 변수들이 지구상의 모든 물질과 운동에 서로 영향을 끼친다. 슈퍼컴퓨터로도 정밀하게 계산할 수 없는 ‘복잡성의 과학’인 것이다.
만년 빙하층의 탄소 측정치, 유사 이래의 기상 측정치 등이 보여주는 역사상의 기후변화도 우리의 섣부른 믿음과는 사뭇 다르다. 12세기 유럽은 매우 추웠지만 그 다음 1세기는 오늘날과 비슷했다. 1760년부터 90년간 동아프리카는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한 가뭄을 겪었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이상기후’는 통계적 수치로 볼 때 오차범위 이내의 ‘정상기후’일 수도 있다.
물론 책의 의도는 ‘기상위기란 양치기 소년의 섣부른 경고에 지나지 않는다’는데 있지 않다. 인간의 힘으로 예측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파국은 무엇이며 그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무엇인지 엄밀하게 따져야 한다는 촉구로 읽힌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