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겨울 극단 ‘미추’에 발을 디딘 나는 얼마 후 연극 ‘오장군의 발톱’ 주인공을 맡는 행운을 얻었다. 그때 그 기회를 만들어 주신 분이 바로 극단의 대표이자 연출가이신 손진책 대표님이었다. 처음 그분을 뵈었을 때는 커다란 산을 마주 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 거대해서 근접하기조차 힘들었고, 그래서 때론 신비하게까지 보였던 그분이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 줄 때는 눈앞이 다 아찔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표님은 나에게 두 발로 무대에 굳게 서 있는 방법과 주위의 어떤 소리에도 초연할 수 있는 집중력과 대범함, 그리고 자리를 지켜내는 우직함을 몸소 가르쳐 주었다. 죽을 힘을 다해 연습해도 늘지 않는 나를 커다란 인내로 지켜봐 주셨고, 그래서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후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 연극을 공연했을 때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인지 공연 후 나는 몇 분 동안 혼절했던 적이 있다. 그때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그 기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스스로 나태해지거나 거만해지는 나를 느끼면 그때를 기억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한다.
이원종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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