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는 식품은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광합성(光合成)한 결과물이다. 동물성 식품도 먹이사슬을 따라가 보면 결국 식물 혹은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 것들이다. 석탄이나 석유도 오래전 땅에 묻힌 동식물의 잔재이니 태양에너지 소산이다. 물도 태양에너지가 바닷물을 증발시켜 비를 내려준 결과이니 태양에너지야말로 모든 생명의 생존기반인 셈이다. 이처럼 멀리는 태양에서부터 가까이는 국가 사회 직장 그리고 가족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층층시하 생존기반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그의 생존기반이 소멸하면 그걸로 끝장이다.
생존의 역사를 보면 생존기반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지혜는 일찍이 곤충과 포유류에서 나왔다. 현화식물의 꽃가루와 꿀을 먹이로 선택한 곤충들은 자기 생존기반인 현화식물의 번식을 돕기 위한 가루받이 기술을 개발, 서비스에 나섰다. 식물의 열매를 먹이로 선택한 포유류도 열매식물의 씨를 멀리까지 날라주는 서비스 정신을 발휘, 생존기반의 번성을 도왔다. 그 결과 이들은 모두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종이 되었다. 지구상 최강자였던 공룡이 하루 1t에 가까운 나뭇잎을 먹어치우면서 생존기반(숲)을 훼손, 너 죽고 나 살기 식(지난주 참조) 생존모형을 추구하는 동안 곤충과 포유류는 너 살고 나 살고 식 주고받음 모형을 개발한 것이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재화와 서비스, 말(言)과 상징, 그리고 사람의 주고받음에 의해 인간사회의 삶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인류학에서는 결혼까지도 그 본질적 의미를 부족간, 가문간 사람의 주고받음으로 본다. 자기 누이동생을 이웃마을로 시집보내고, 그 마을에서 자기 부인을 맞아오면 마을 사이의 사회적 주고받음은 더욱 원활해질 것이다. 자연 생태계 속의 주고받음은 먹이의 제공과 번식을 도와주는 차원이지만, 인간사회에서는 물질적, 정신적, 정서적 모든 가치가 주고받음의 대상이 된다.
#국가와 국민 사이의 주고받음
국가 혹은 정부의 생존기반은 국민이다. 국민을 잘 살게 해주지 못하는 국가 혹은 정부는 생존기반을 붕괴시켜 스스로 자멸한다는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자. 1961년 전 세계를 긴장시킨 비행기 추락사건이 있었다. U2기라는 미국 정찰기가 당시 소연방공화국(USSR) 고공을 비행하다가 로켓을 맞고 떨어진 것이다. 당시 흐루시초프 총리는 유엔총회에 나와 구두를 벗어 탁자를 치면서 노발대발했다. 전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던 소연방의 위력에 모두가 숨을 죽이며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막강했던 USSR가 지금은 김소월의 시구(詩句)처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되어버렸다.
USSR는 (군사적으로는 미국과 세계 최강을 겨뤘지만) 자기의 생존기반인 국민에게는 적절한 행정 서비스를 해주지 못했다. 국가가 국민을 잘 살게 해주면, 국민은 국가에 납세와 국방의 의무, 국기를 향하여 경의를 표하는 애국심을 바칠 것이다. 이것이 국가와 국민 사이의 주고받음이다. 1990년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항공료는 (미화로) 2달러 정도인데, 그것을 구입하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국민이 빵 한 덩이 사기 위해서도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게 만든 나라, 이런 정치를 한 나라가 외국의 침략 없이 (생존기반의 붕괴로) 스스로 무너진 것은 역사의 필연법칙일 것이다.
소비자와 고객, 협력업체들을 기업이 이익극대화를 위한 수단적 존재로 인식하던 시대는 갔다. 그들은 기업의 생존기반이다. 생존기반이 풍요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발, 봉사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번영에 이르는 길이다. 사회생활에서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 사이는 서로가 서로의 생존기반이 된다. 국가와 국민 사이, 기업과 고객 사이, 가정에서는 부부사이가 서로의 생존기반이다. 생존기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어떤 봉사를 할 것인가? 생존기반에 대한 고마움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봉사를 실천하는 수준 여하가 인간적 성숙을 재는 척도일 수도 있다.
윤석철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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