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故 유영국 선생 추모…세상과 타협않는 작가정신

  • 입력 2002년 11월 12일 17시 45분


오광수
유영국 선생이 타계하셨다. 1930년대 후반 일본 자유전(自由展-최초의 추상미술단체)을 통해 김환기, 이규상과 같이 활동하였던 선생은 우리나라 모더니즘의 제 1세대 작가이자 추상 미술의 선구적인 존재였다.

그는 초기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추상 세계를 지향해온 거의 유일한 작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절제된 포름, 간결한 구성에서 시작된 엄격한 그의 추상미학은 해방과 더불어 자연에의 뜨거운 감동을 굴절시키면서 더욱 풍요로운 깊이를 더해갔다. 50년대에는 풍부한 색채와 질료의 물질성을 보이는 치밀하면서 탄력 있는 조형으로 진전되었으며, 60년대에는 분방한 표현적 요소를 가미한 모뉴멜탈한 구성에 도달하였다. 만년에는 다시 간결한 원형에의 환원과 깊이 있는 색면의 원숙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선생은 출발에서부터 현대 미술 운동에 깊이 관여하였다. 조형 이념 운동이 그룹의 형식을 통해 전개되고 있었던 시대에 그의 활동 범주도 자연 그룹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48년 신사실파 창설, 57년 모던아트협회 창설, 그리고 62년의 신상회 창설에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으며, 현대작가 초대전을 통한 재야 미술의 결속과 이념의 결집에도 언제나 앞서있었다. 선생의 행동 반경은 현대 미술의 이념적 확인과 결속으로 이어졌으며 많은 후진들이 그 주변에 모여들었다.

64년 신상회를 떠나면서 선생은 그룹 운동의 자기 역할을 마감하고 자신에 충실한 개인전에 주력하였다. 64년을 경계로 이전을 그룹 활동 시기라고 한다면, 이후는 개인전 중심의 활동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격년으로 열리었던 개인전은 얼마나 자신에 충실한가를 보여주는 치열한 작가 정신의 결정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생은 시대와 대결했고 자신과 대결했다. 그러한 모습은 이어지는 개인전으로 보여주었다. 때로는 이같은 모습이 고집불통으로도 비치었고 타협 없는 정신의 결벽은 오해도 불러일으켰다.

선생은 한때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후진을 가르치는 위치에도 있었으나 곧 자신에로 되돌아 왔으며 창작에만 혼신을 다했다. 작가는 창작 외 다른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작가 정신에 누구보다도 충실했으며 세상과 타협하는 그 어떠한 일에도 관계하지 않았다. 이점에서야말로 선생은 가장 이상적인 전업작가의 모델이었으며, 진정한 작가의 살아가는 모습을 후진들에게 보여준 사표였기도 했다.

살아있는 고전으로 불리었던 선생의 타계로 우리 미술에도 모더니즘 제 1세대의 막이 천천히 내려지고 있다. 한 세대는 가고 있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언제나 우리 미술의 풍요로운 결실로서 길이 기억될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던 치열한 작가 정신은 우리 미술의 마르지 않는 샘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선생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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