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임채청/3인의 ´정치노숙자´

  • 입력 2002년 11월 12일 18시 08분


반역이나 변절이나 간통이나 스스로 절조를 버린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창궐하는 점 또한 같다. 시작과 결말도 비슷하다. 대체로 처음은 비굴하고 끝은 비참하다.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 선생은 무절제한 정치인을 ‘음부(淫婦)’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테네를 패망으로 이끈 알키비아데스는 모든 걸 보여준다. 잘생기고 말 잘하고 재주 많은 그는 아테네의 원정군 총사령관을 하다 신성모독죄로 위기에 처하자 적국인 스파르타로 달아나 모국을 치는 데 앞장선다. 그러나 스파르타에서도 왕비와 간통한 것이 드러나 페르시아로 도망친 그는 결국 페르시아마저 배반하고 아테네로 돌아와 암살당한다. 그것도 간통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아테네에선 가장 아테네인다웠고 스파르타에선 가장 스파르타인다웠다’는 게 그에 대한 후대의 평. 이 역시 반역의 무리들에게 공통된 특징이다.

한국에도 알키비아데스 이상으로 변절의 편력을 가진 정치인이 많다. 이들도 A당에선 가장 A당원답고 B당에선 가장 B당원답다는 얘기를 듣는다. 생존을 위한 둔갑술로 이해하려 해도 역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요즘 난리법석인 민주당 탈당의원 21명의 면면을 보면 변절의 속성을 몇 가지 더 알 수 있다. 당 국민경선관리위원장 사무총장 대변인과 국회상임위원장 행정부처장관 등 당정의 요직을 지낸 사람이 대부분이다. 변절전과를 가진 사람도 3분의 1이 넘는다. 이미 ‘한 마리 연어’가 되어 과거에 배신하고 떠난 당으로 되돌아간 사람도 있다.

각자 이리저리 둘러대지만 그 동기야 뻔하다. 정치인이 다급해지면 맨 먼저 명분을 벗어던지고 다음엔 의리를 내팽개치며 마지막까지 붙잡는 것은 권력뿐이라는 정가의 속설이 틀리지 않을 듯싶다. 당적을 버리고 취하는 것이 이토록 경박해서야 정당정치의 토양은 척박할 수밖에 없다.

한 전직 의원은 “정치인 중엔 금배지가 보장되는 공천만 받을 수 있다면 김정일이 내려와도 줄을 설 사람이 있을 것이다”고 단언한다. 이문이 많은 곳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장돌뱅이 같은 정치인을 지칭한 것이다. 그래도 이들은 장을 벌일 보따리라도 있으나 그마저도 없는 진짜 딱한 정치인이 있다.

최명헌 장태완 박상희 의원이 그렇다. 당에 묶인 전국구여서 보따리 대열에 합류할 수 없게 되자 구차하게 제명을 요구하고 나선 이들은 민주당 내에서도 천덕꾸러기가 됐다. 배지를 떼지 않고는 다른 데서 받아줄 수도 없어 영락없는 ‘정치노숙자’ 신세인 것이다. 변절도 급이 있다면, 이들은 하지하(下之下)에 속한다. 이들은 대선 이후 본격화될 ‘정치IMF체제’ 하에서 더욱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할 것이다.

이토록 정치판을 난장(亂場)으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지도자들이다. 5년 전 이맘때 김대중 국민회의 대통령후보는 한나라당 내홍을 보면서 “5년 후엔 우리당이 저렇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집권 후엔 ‘수의 정치’에 집착해 분별 없이 의원영입에 나섰으니 어쩌면 현 민주당사태는 ‘눈먼 권력’의 업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다시 5년 후는 어떨까. 지금의 대선후보들도 악업을 쌓는 일을 엄중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임채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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