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조기숙/´후보 단일화´ 감상법

  • 입력 2002년 11월 12일 18시 08분


요즘 한나라당이 철새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자 이회창 후보는 ‘구국과 애국의 결단’이라며 환영을 표했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대세론’이 승기를 잡았다며 세 불리기를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마냥 이를 반길 일은 아니다. 우선 이회창 대세론은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를 현실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 勢불리기´가 역풍 불러▼

한나라당은 노-정 후보의 단일화를 원칙도 명분도 없는 야합이라고 비난하지만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양 후보의 단일화를 원하고 있다. 우리는 결선투표 제도가 없어 1987년 양 김(金)의 분열이 노태우 후보에게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안겼던 상황이 이번에도 재현될 수 있다. 게다가 선거운동 기간에는 여론조사 공표도 금지돼 있어 될 만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투표도 불가능하다. 결국 후보단일화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서비스를 후보들이 직접 제공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후보단일화가 과연 명분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 후보는 노 후보보다는 이 후보에 더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 출생성분만을 비교한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밑바닥 출신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명문가 출신의 케네디 대통령이 같은 당에 속하면 안 된다는 주장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다. 노 후보와 정 후보는 올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인 정치개혁에 대한 비전이나 대북정책 복지정책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양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가장 큰 명분은 지지기반이 상당부분 겹친다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 국민은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보수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를 거쳐 민주화시대에 이르러서도 우리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불만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원칙을 지키려고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은 손해를 보고, 대세에 편승하는 사람은 자자손손 영화를 누리는 현실을 이제는 개혁해야 한다는 바람이 팽배해 있다.

이러한 바람이 노 후보와 정 후보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비록 요즘 바람이 주춤하지만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 남아 있는 한 불씨가 죽은 것은 아니다. 기회만 있으면 불씨는 언제든 다시 화염으로 번질 것이다. 기회주의자의 선택이 만들어 놓은 이회창 대세론은 이러한 불씨에 불을 지피는 역풍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양 후보 단일화는 조직만 불리는 이회창 대세론이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명분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시대정신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델컴퓨터’의 등장과 ‘컴팩’의 몰락이라고 생각한다. 설립 18년 만에 업계 최고 매출을 달성한 델의 성공비결은 대리점 없이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생산 판매하는 직거래 모델에 있다. 반면 업계 최고를 달리던 컴팩은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대리점을 없애는 데 실패했다. 과거에는 대리점이 기업과 소비자를 매개시켜주는 서비스의 상징이었지만 인터넷시대에는 소비자에게 높은 부담만을 안겨주는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대선이 과거처럼 조직에 의존한다면 기회주의자의 한나라당 입당은 매우 반길 일이다. 이는 조직의 거대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거대한 조직은 선거기간 중 막대한 정치자금의 상징이 되며 당선 후에는 갚아야 할 빚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노 후보와 정 후보는 1987년의 양 김보다는 후보 단일화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

▼구태의연한 방식은 야합일뿐▼

하지만 이들이 단일화를 이룬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변화에 대한 바람과 시대정신에 어긋나는 단일화는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자신에게 불리하면 언제든지 판을 깰 자세로 협상에 임한다거나 시대정신과 동떨어진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단일화를 이룬다면 이는 단일화 자체가 명분 없는 야합에 불과하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단일화의 방법도 시너지 효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합당보다는 양당의 정체성을 유지한 가운데 연대하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합당은 민주당의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이번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이 기회주의자를 심판할 전망이다. 이회창 후보가 단일화된 후보에게 맞서 승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대세이다.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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