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준엄함을 강조한다면 영화는 형사가 수갑을 채워 법 집행에 나서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반면 인간의 정리(情理)를 생각한다면 눈감고 풀어주는 장면이 피날레가 될 수도 있다.
경찰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활동으로 수배 중인 학생들과 어울려 ‘친선축구경기’를 벌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한 인터넷뉴스매체의 주선으로 서울산업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서총련(한총련 산하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 학생들과 서울 종로경찰서 경찰관들의 친선 경기. 경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던 경찰들은 깜짝 놀랐다. 서총련 의장과 한국항공대학 총학생회장 등 학생 2명이 자신들을 “A급 수배자”라며 신분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경색되자 한 경찰 간부는 “오늘은 경찰이 아닌 선수다. 오늘 우리의 작전은 ‘친선작전’이다”며 경기를 계속하자고 제안했다.
논란의 핵심은 경찰관들이 수배자들을 눈앞에 두고 ‘공을 찰 수 있느냐’는 원칙론이 하나. 또 다른 주장은 학생과 경찰이 모처럼 한데 어울리는 자리에서 수배자를 검거해야 하느냐는 현실론이다.
두 가지 주장 모두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짓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그러나 법을 집행해야 할 경찰이 수배자와 어울려 공을 찼다는 사실은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지만, 경찰관 수십 명이 모인 자리에서 스스로를 ‘A급 수배자’라고 공개하면서 함께 어울린 학생들의 ‘대담함’에는 말문이 막힌다. 더구나 이들은 경기를 마치고 같이 술도 마신 후 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위의 장면에는 법의 엄정함도 인간적인 정리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희화화된 공권력만이 있을 뿐이다.
학생들이 진정으로 경찰과 화합하길 원한다면 법에 저촉되는 불법 폭력 시위는 벌이지 말아야 한다. 축구경기에 나와 수배자라고 밝히는 것은 공권력을 공공연히 무시한 것이고 이를 용인한 경찰은 직무유기를 했을 뿐이다.
이훈기자 사회1부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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