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감시활동을 벌이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에 의해 ‘세금도둑’으로 선정된 산업은행은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구조조정기금을 대기업이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등 본래의 목적에 어긋나게 운용해 2800여억원의 잠재 부실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외국계 회사에 과다하게 수수료를 주어 460억원을 낭비한 사실도 밝혀졌으니 도대체 산업은행이야말로 세금을 낭비하는 ‘공공의 적’이라 하겠다.
우리는 산업은행의 ‘밑빠진 독’ 수상을 계기로 4000억원 증발 의혹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자 한다. 현대상선 4000억원 지원과 관련해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를 고소했던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소를 취하해 검찰이 수사를 중단했고 산업은행을 감사중인 감사원은 무슨 이유에선지 감사기간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여론이 들끓자 계좌추적까지 하겠다던 감사원이 지금 일언반구 없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감사원은 당초 감사 마감시한이었던 이달 초 산업은행의 관련 계좌를 정밀 추적하기 위해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를 15일까지 연장한다고 했으나 시간 끌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부 사정기관들은 여론의 관심이 고조되어 있을 때는 곧 조사하는 척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적당히 처리해 버리곤 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정부가 여론의 소나기를 피해 이 문제를 국민의 기억에서 슬그머니 제거하려는 의도라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다. 4000억원 증발 의혹을 적당히 얼버무릴 경우 관계자들은 다음 정권에서 더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감사원마저 국민을 우롱하려 든다면 이 기관 자체가 또 다른 의혹의 대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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