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음악]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 입력 2002년 11월 12일 19시 02분


유종호
서양 고전음악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은 대학때였다. 소년시절 문학을 통해서 길러진 막연한 서구 동경이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졸업 후엔 접할 기회가 없었고 겨우 라디오 음악으로 만족하는 수 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오디오 기계를 장만한 것은 30대 후반 유학 시절이었다. 눈이 유난히 많이 오기로 이름난 북위 42도의 외국 도시에서였다.

연래(年來)의 소망을 성취하고 나서 처음으로 사들인 음반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바흐의 a단조와 g단조 바이올린 협주곡,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 2번,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몇 곡과 피아노 협주곡 20번, 그리고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3번,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이었다. 기계는 헐한 것이었지만 음반은 최고가품이었다. 새로 사온 음반을 처음으로 장만한 기계 위에 올려놓는 순간의 떨림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음악에 관한 한 나는 초심에 충직한 순정파다. 귀가 어느 정도 뚫리고 나서 처음으로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 2악장을 들었을 때의 설레임은 지금도 여전히 나의 것이다.

바흐의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 2번을 들으면서 ‘행복의 약속’이라는 예술의 정의를 제멋대로 떠올리는 버릇도 여전하다. 그러나 아마 가장 많이 들은 것은 d단조 20번을 위시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일 것이다. 다른 것을 들으려면 갑자기 시간이 아까워진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은 최근 간행된 대화집에서 조금 별나게 피아노 협주곡 9번을 가리켜 ‘세계적 경이의 하나’라고 부르고 있다. 21세에 작곡한 이 작품이 모차르트의 최초의 걸작이라며 덧붙인 것이다. 그러나 모차르트 자신과 그의 음악 모두가 ‘세계의 경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19번에서 27번에 이르는 모든 피아노 협주곡이 찬란한 슬픔이요 영원한 기쁨이다.

“음악없는 삶은 하나의 오류”라고 했던 니체의 말을 믿는다. 가령 바흐 음악을 두고 ‘영원한 인간의 고향’이라던가 자기연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자의적인 것이다.

음악에 대한 언어적 논평은 그야말로 인상의 피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치즘에 음악을 이용당한 책임으로부터 바그너는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하면서 모차르트의 경우엔 어느 소리 하나 이용할래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 루카치의 말이 무의미한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모차르트에게 바친 최고 찬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유 종 호 문학평론가·연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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