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 태업하는 건가

  • 입력 2002년 11월 14일 18시 14분


검찰이 정상이 아니다. 검사가 160여명이나 근무하는 서울지검에서 검사가 직접 청구하는 영장(직수영장)이 평일인데도 한 건도 없는 날이 있다니 탈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그렇지 않은 날도 요즘엔 직수영장이 하루에 2∼6건밖에 안 된다니 이래서야 ‘식물검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갑자기 범죄가 줄어들거나 검찰의 수사력이 떨어졌을 리 없을 테니 분명 뭔가 다른 곡절이 있을 것이다.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 이후 검찰 스스로 위축된 점도 있을 것이고,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바뀐 뒤 후속인사 때문에 술렁거리는 점도 있을 것이다. 또 대선철이라 검찰권 행사를 다소 자제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도가 지나치다. 최근 검찰을 향해 쏟아지는 여론의 비난에 대해 검찰이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검찰 일각에서나마 비난여론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있다면 심상명 신임 법무장관이 강조한 ‘겸손한 검찰’과는 거리가 영 멀다. 나아가 ‘태업’에 대한 묵시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라도 하다면, 검사동일체 원칙이 적용되는 검찰의 지휘책임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모든 수사기관 위에 검찰을 두고, 거기다가 대검 중앙수사부니 지검 특별수사부니 하는 기구를 따로 설치한 취지는 자명하다. 일반수사기관이 손대기 쉽지 않은 지도층 비리나 구조적 비리 등 거악(巨惡)을 뿌리 뽑으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송치사건이나 처리하고, 인지수사를 외면하는 것은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의 무력화나 직무유기 모두 위험하다. 검찰이 잠들거나 눈감고 있으면 국민은 안심하고 잠을 잘 수가 없다. 검찰청사에 다시 불을 환히 밝혀 거악이 편히 잠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만이 검찰의 오명을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는 길이다. 아니면 검찰은 또 한번 과오를 범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사회질서가 재편되는 전환기 검찰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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