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송진흡/나사 풀린 관세청

  • 입력 2002년 11월 14일 18시 33분


지난달 중순 부산 용당세관의 7급 공무원 박모씨(44)가 검찰에 구속됐다. 중고차 수입업자로부터 뇌물을 받고 수십억원어치의 외제 고급승용차 밀수를 묵인한 혐의다.

이에 앞서 9월에는 수입업자들이 밀수한 비아그라를 통관시켜 주고 1400만원을 받은 인천세관 직원 2명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한 명은 불구속입건됐다.

관세청이 요즘 내걸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는 ‘깨끗하고 투명한 세관 만들기’다. 그러나 불과 한 달 간격으로 4명의 직원이 비리로 사법처리된 것은 이런 구호를 무색하게 한다.

공개된 것이 이 정도라면 드러나지 않은 수뢰사건은 더 많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관세청은 오래 전부터 통관과정에서 항상 유혹과 이권(利權)이 따를 소지가 많은 이른바 ‘물 좋은 기관’으로 꼽혀 왔다.

한 수입업자는 “관세청이 자랑하는 ‘안전, 신속, 친절’한 통관을 하려면 막강한 권한을 가진 세관공무원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위험, 지연, 불친절’한 통관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관세청의 ‘헛발질’은 또 있다.

관세청은 1000억원대에 이르는 유사 휘발유 밀수출입 업체를 적발, 관련자 4명을 구속조사 중이라는 보도자료를 12일 내놓았다. 그러나 보도자료를 배포한 시점은 구속영장이 떨어지기도 전이었다. 또 다음날 실제로 구속된 사람은 2명이었다.

관세청이 이처럼 무리하게 자료를 급히 돌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사건 수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적극 알리고 싶어한 한 관세청 고위인사의 공명심이 결정적이었다는 후문이다. 피의자의 인권이나 해당업체에 미칠 영향은 뒷전이었다.

한국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무역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다. 관세청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와 함께 한국의 ‘관문’을 지키는 기관이다. 이런 관세청이 일부 직원들의 비리와 고위층의 ‘한건주의’로 흔들리면 곤란하다. 관세청은 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송진흡기자 경제부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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