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장인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과 금융노련 이용득 위원장을 비롯해 경제특구법 국회통과 저지를 위해 노숙투쟁을 하던 노조 간부 10여명이 몰려왔다. 이들은 기자들에게 “경제특구란 말은 사회주의 국가밖에 없다”면서 “근로기준법조차 무시하는 경제특구법을 통과시키면 위헌소송을 내고 강력한 반대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노조 지도부는 정치권과 정부에 노조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회의장에 직접 들어가겠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위협에 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인 한나라당 김락기(金樂冀) 의원은 회의장에 들어가 노조 지도부를 만나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결국 윤진식(尹鎭植) 재경부 차관과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의 정책조정위원장들이 회의 도중에 자리를 빠져 나와 옆에 있던 의원식당에서 노조 지도부와 마주 앉았다.
여야정 협의회가 노동계와 정치권 정부간의 ‘노정정(勞政政)’ 협의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노조측은 “법안이 강행통과되면 위헌소송을 내겠다”며 거듭 정부측에 압력을 가했다.
결국 30여분간 진행된 간담회 직후 여야정이 다시 모여 만든 발표문에는 국제공항과 항만을 낀 도시에 한정해 경제특구로 지정한다는 원안에 ‘경제특구를 결정하는 위원회에 노동계를 포함시킨다’는 내용이 추가로 삽입됐다.
이런 상황이 쑥스러웠던 듯, 회의에 참석했던 정부부처의 한 간부는 “노조가 쳐들어온다고 난리를 치니 안 만날 수도 없고…”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대선까지 앞둔 시점에 정치권이 이해단체들과 만나거나 그들의 이해를 수렴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경부와 국회가 이미 2차례나 공청회를 열어 노동계 의견을 수렴하고, 13일에는 노조측이 양당 정책위 의원들을 만나 의견을 전달한 상태에서 이날 정부와 정치권이 보인 행태는 ‘눈치보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앞으로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민생문제를 논의할 때마다 압력단체들이 국회에 나타나 ‘물리적 위협’으로 이해를 관철하려 할 경우 정치권은 또 뭐라고 설명할지 궁금하다.
최영해 정치부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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