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한국사회에 외환위기가 닥치자 국민은 경제관료들에게 책임을 묻고 나아가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책임은 결국 서울대에 있다.”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불투명하고 비합리적인 사회구조의 뿌리에는 ‘서울대’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서울대 출신을 정점으로 한 학벌 중심의 사회풍토, 차세대 교육의 전형이 된 구태의연한 서울대의 교육과 입시제도가 한국사회를 비효율적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었다.
더욱이 ‘1등’이 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책임은 회피하는 비윤리적 ‘엘리트’들을 길러낸 곳이 바로 서울대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며 ‘서울대 폐교론’ 또는 ‘서울대 망국론’까지 제기됐다.
저자는 ‘고양이 빌딩’의 주인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 책으로 가득 찬 3층 건물에서 철학, 생태학, 생물학, 뇌의학, 영화, 우주 등 온갖 방면의 책들을 읽고 쓰며 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는 ‘독서광’ 답게 다양한 자료들을 섭렵하며 도쿄대의 몰락 원인과 그 대책을 이야기한다.
이미 일본 사회에서 도쿄대에 대한 평가는 예전과 같지 않다. 일본의 한 주간지가 상장기업 또는 그에 버금가는 600개 기업의 인사부장에게 전국 대학 평가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2개 항목의 평가 중 도쿄대는 한 항목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2위)/ 개성적이다(14위)/ 이해력이 빠르고 요령이 좋다(2위)/ 조직의 일원으로서 융화를 잘한다(96위)/ 조직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다(7위)/ 창조성이 있다(11위)/ 정신적으로 자립해 있다(25위)/ 이 대학 졸업생은 꼭 채용하고 싶다(6위)….
종합득점 순위는 교토대, 히토쓰바시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오사카대, 고베대에 이어 도쿄대가 7위다.
도쿄대 불문과와 철학과를 졸업한 다치바나는 1996∼1998년 교양학부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서 도쿄대 학생들의 지적 수준에 ‘경악’하며 일본의 교육개혁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1엔짜리 동전의 지름이 0.1㎝라거나 종이의 두께가 1000micron(1㎜) 이상이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버젓이 도쿄대 이과생으로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문부성의 이른바 ‘융통성 있는 교육정책’이 바로 도쿄대를 비롯한 전반적 교육수준의 하향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고 전문교육에 집중한다는 취지의 ‘융통성 있는 교육정책’은 기본 교양의 토대가 없는 기술자만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단순히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라고 지적한다. 낮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가 기술을 모르는 단순 교양인이라면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는 전문분야의 기술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되 사회전체를 보는 안목을 갖춘 교양인이다. 그리고 이런 제너럴리스트를 육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높은 수준의 교양교육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교양교육이란 흔히 생각하듯이 고전에 관한 폭넓은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각 학문의 최전선에 있는 최신 지식과 이를 활용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단순히 입시제도나 도쿄대의 개혁론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의 시대는 끝났다. 현대사회는 고등교육 유비쿼터스(ubiquitous·도처에 존재하는) 대학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는 서점, 도서관, 인터넷 등 지식과 정보가 있는 모든 곳에서 ‘조사’하고 ‘문서작성’하고 ‘발신’하는 능력을 교양의 기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인문사회과학뿐 아니라 생명과학과 뇌과학을 중심으로 한 현대과학을 현대사회에 필수불가결한 교양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꿈꾸는 새로운 대학의 모델은 그의 ‘고양이 성’만큼이나 자유롭고 풍요롭다. (원제·東大生はべカになったか)
김형찬기자 철학박사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