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천재 예술가의 삶 ´근원 김용준 전집´

  • 입력 2002년 11월 15일 17시 35분


◇근원 김용준 전집(전 5권)/김용준 지음/1400쪽 8만5000원 열화당

누군가 했어도 벌써 했어야만 했던 일이다. 근원 김용준(近園 金瑢俊·1904∼1967) 전집 5권은 한 사람의 화가,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그리고 당대의 문장가로서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자취이자, 불행했던 민족사의 아픔과 그 아픔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서려있는 한 지성의 증언이다.

1988년, 이른바 월북문인들의 저작이 해금되면서 그의 아름다운 수필집 ‘근원수필’이 복간되고, 또 환기미술관에서 ‘수화와 근원’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면서 우리에게 서서히 다가오던 근원이 이제 전인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근원 김용준은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돌아온 우리 근대미술 초기의 화가였다. 그러나 그의 미술활동은 화가보다도 이론가로서의 역할이 더 두드러졌다.

1930년대, 근원은 이제 막 서양화에 눈뜬 우리 화단에서 이른바 모더니즘의 기수로 당시로서는 아방가르드라고 할 정도의 비평활동을 벌였고 민족적 서정을 ‘황토색’ 이라는 이름으로 담고자 할 때 그것이 소재주의에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높은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길을 명석하게 외치고 나섰다. 이때가 아마도 미술평론가로서 근원의 전성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김용준 자화상

1940년대에 들어서면 근원은 ‘문장(文章)’지 동인으로서 주옥같은 수필을 기고하고 또 이 잡지의 표지 장정을 맡아 지금 보아도 고아(古雅)한 북디자인 작업을 해냈다. 당시 김기림, 정지용, 이태준 같은 문사들이 아름다운 수필을 많이 발표한 것은 한국현대문학사의 뚜렷한 자취인데 특히 근원의 수필은 문인화가적 편모와 모더니스트다운 세련미를 유감없이 발휘한 뛰어난 문체로 그가 화가인지 문장가인지 알 수 없게 했다.

근원은 미술사에도 조예가 깊고 높은 안목을 갖고 있었다. 8·15 광복이 되자 서울미대 교수로 ‘조선미술대요’를 저술한 것은 단순히 한국미술사교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국미에 대한 자신의 미학을 집약적으로 기술한 것이었다.

월북 후 근원은 안악3호분 발굴에 동참하며 미술사가로 활동하여 그의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1958)는 북한 과학원 예술사 연구총서 제1집으로 출간될 정도였다.

또 근원은 ‘승무’같은 명작을 발표하면서 화가로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 북한에서 이른바 ‘조선화’ 논쟁이 일어나자 근원은 ‘김일성 교시’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조선화’라는 것이 작가적 개성과 문인화의 정신을 손상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펴다가 사실상 숙청되고 만다.

근원 김용준 연보에 의하면 196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양미술대학 예술학 부교수였던 것으로 되어 있지만 김정일의 전처인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이 쓴 ‘등나무 집’을 보면 근원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암울했던 식민지시대에 태어나 화가와 미술평론가 그리고 문장가로 빛나는 지성과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열심히 살아갔던 근원 김용준, 자신의 소신과 기대를 안고 월북하여 예술적 최선을 다하지만 끝내는 세상으로부터 배척받은 그의 인생편력이 이렇게 전집 5권에 들어 있는 것이다.

남에서는 월북했다는 이유로, 북에서는 당의 방향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남과 북 모두에서 금기시했던 그의 저작들이 이제 아름다운 장정에 어엿한 전집으로 출간됐다는 사실에서 나는 세월의 고마움과 함께 쓸쓸함을 느낀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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