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중국 침입을 본격화하던 1933년 여름, 중국 상하이(上海)의 어느 뒷골목 서점에서 한 노신사가 신간들을 뒤적이다가 ‘조선(朝鮮)’(황옌페이·黃炎培 지음)이라는 책을 사들고 나섰다. 그는 머물고 있던 여관에 돌아와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고 우리를 이해하고 감싸줘야 할 중국인이 우리 민족을 이처럼 매도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나라를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국제사회에서 잘못된 한국관(韓國觀)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다음해 늦은 봄까지 울분에 차서 지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목은 ‘황옌페이의 한국사관을 논박한다(駁黃炎培之韓史觀)’이다.
그 노신사는 성재 이시영(省齋 李始榮·1868∼1953).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형인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과 함께 6형제의 전 가족 50여 명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해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했고 광복 후에는 초대 부통령을 지냈던 인물이다. 1952년에는 민주세력의 추대로 대통령에 출마해 부패와 독재로 비판받던 이승만 대통령과 맞서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민족의 근원부터 당대까지의 역사를 서술하며 중국인 일본인 등이 왜곡한 역사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한민족의 자긍심이 가득찬 역사관을 펼치고 있다.
우선 서론에서는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개국의 과정과 그들의 치적을 설명하고, 그후 중국 세력의 끊임없는 침략과 맞서면서도 하늘의 가르침을 본받아 찬란한 문화생활을 영위했던 사실을 기술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금속활자, 거북선, 한글 등의 자랑스러운 문물을 이룩하고 ‘동방예의지국’의 찬사를 듣던 나라가 세도정치기를 거치며 쇠락해 간 과정도 상세히 서술했다.
특히 저자는 중국인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과 충고를 했다. 한민족은 나라를 잃고 중국 땅에 와서 중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중국인들은 오히려 수수방관하고 있으니 될 말이냐는 것이다. 그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손을 맞잡고 일본 침략자를 몰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을 제안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중국인들에게 중국에 와 있는 한국인들을 정성껏 돌봐달라고 청하며 우리는 반드시 나라를 되찾아 옛날의 ‘동방군자국의 영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현대사의 현장에 있었던 지사의 생생한 육성으로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