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76…바람 속의 적②

  • 입력 2002년 11월 18일 17시 48분


이기고 싶다. 그러나 이기기 위해서 달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쪽이 강하다. 나는 패배에서 한 걸음이라도 멀어지기 위해서 달리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짓밟히고, 하루하루 착취당하고, 하루하루 핍박받고, 조선 사람들은 패배를 반복하고 있다. 져라! 져! 져! 하지만 한탄을 해서는 안 된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나는 바람 속의 적에게 싸움을 건다. 어이! 왜놈들! 어디 덤벼 봐! 내 심장을 치욕을 토해내고, 하늘을 향해 직소(直訴)한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우철은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갈아입을 옷과 운동화를 놓아둔 운동장 구석으로 이동하여, 수건으로 콧물을 닦았다. 춥다. 발가락의 감각이 없어져가고 있다. 이럼 안 되는데. 좀 뛰면서 몸을 데워야지. 보자기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운동화 끈을 고쳐 매려는데, 손이 곱아 풀리지 않는다. 우철은 손바닥을 몇 번이나 호호 불고서 운동화 끈을 풀어 꼬인 채 교차된 부분을 바로 했다. 운동화야, 운동화야, 아무쪼록 내 발을 그 누구보다 빨리 종점으로 데려다 다오, 내 소중한 운동화야. 올 봄까지 작업화를 신고 달렸는데 오래 달리면 발바닥이 아팠다.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건너편 신발 가게에 특별히 주문한 운동화다. 아버지는 왜 경쟁 상대네 가게에 신발을 주문하느냐고 화를 냈지만, 고무신과 작업화와 우산과 사각 모자밖에 팔지 않는 우리 가게하고는 비교도 안 된다. 양화점은 일본 사람을 상대로 구두와 운동화를 만들어 팔고 있으니. 나는 발 모양을 뜨기 전에 자세하게 주문했다. 색은 검정이고, 가능한 한 부드러운 가죽이 좋습니다, 바닥은 두툼하고, 7밀리미터 정도의 쇠를 10개 박아 주십시오. 종이하고 연필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어린아이 송곳니 같은 쇠징입니다. 바닥에 가죽만 있으면 달릴 때 미끄럽거든요.

우철은 운동화 끈을 나비 모양으로 묶고 일어섰다. 오른쪽이 약간 끼는 것 같다, 다시. 발꿈치를 땅에 대고 발끝을 세우고 앞에 있는 구멍부터 조금씩 푼다. 일어선다. 이번에는 뒷꿈치가 약간 헐렁하다. 안 되겠어, 다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우철은 혀를 차면서 털버덕 앉았다. 초조해 하면 안 된다. 우철은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일부러 천천히 끈을 풀어 첫 구멍부터 다시 끼었다. 그리고 달리는 중에 끈이 풀리지 않도록 나비 모양 매듭을 두 번 묶고 일어섰다. 음, 이제야 제대로 된 것 같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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