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피아니스트' 뒤틀린 인간관계 비극을 낳다

  • 입력 2002년 11월 18일 18시 23분


사진제공 M&N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 M&N엔터테인먼트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의 황금종려상 여우주연 남우주연상 등 3개 부문을 휩쓴 프랑스-오스트리아 합작영화 ‘피아니스트’는 뒤틀린 인간관계가 낳은 비극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보고서라 할 만하다.

이 영화는 1997년 온기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영화 ‘퍼니 게임’을 통해 폭력의 끔찍함을 보여줬던 독일 출신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작품. 하네케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일방적 지배와 종속만이 존재하는 모녀와 남녀 관계를 냉정하게 묘사한다.

비엔나 음악학교의 피아노 교수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미혼의 중년 여성. 그는 학생들에게 엄격한 반면, 밤에는 혼자 섹스 숍에서 포르노를 보며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 그런 그에게 젊고 매력적인 대학생 클레메(브누아 마지멜)가 접근한다.

영화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싸우고, 한 침대에서 자는 모녀 관계의 묘사로 시작된다. 딸을 피아니스트로 만드는 데에 자신을 바친 엄마, 그런 엄마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딸은 정신적으로 서로에게 남성의 대리 역할을 한다.

어머니는 주변과 관계를 차단시킴으로써 에리카를 고립시키고, 에리카는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만 어머니에게만은 종속적이다. 이같은 관계는 에리카에게 사디즘과 동시에 마조히즘의 성적 성향을 심어준다.

에리카는 클레메와 관계에서도 사도 마조히즘의 행위를 요구하는 등 지배나 종속적 사랑 밖에 알지 못해 결국 폭력에 짓밟히고 관계 맺기에 실패한다.

처참하게 뒤틀려버린 여자의 내면을 입술의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표현해내는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빼어나다. 독일 여성소설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가 원작. 원제 ‘La Pianiste’. 18세이상 관람가. 29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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