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평의 카지노장은 자리가 부족해 아침마다 추첨을 해 좌석권을 배부할 정도다. 그같은 열기를 타고 하룻밤새 재산을 탕진한 사람들의 ‘피해담’도 잇따랐다.
기자가 강원랜드를 찾은 지난 13일에도 바깥의 찬 공기와는 딴판으로 카지노 실내는 테이블마다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이 뿜어내는 입김으로 달궈져 있었다. 실내의 그 열기나 표정은 한국의 도박 열풍의 체온계이자 자화상이랄 만했다.
1년 365일, 그 생생한 체온을 느끼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이곳의 딜러들이다. 그들의 눈에 우리 사회의 도박 열풍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도박이 아닌 게임”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일단 딜러들은 “또 무슨 안 좋은 얘기를 쓰려고 하느냐”고 경계심부터 내비친다. 그동안 강원랜드에 쏟아진 숱한 비난과 눈총에서 비롯된 거부반응이다.
이들은 그러나 이구동성으로 “카지노를 도박이 아니라 건전한 게임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주문하듯 말했다.
게임장이 됐든 도박장이 됐든 딜러들에게 이곳은 우선 소중한 일터다. 인하공전 항공운항과를 나와 동창들처럼 하늘로 올라가는(스튜어디스) 대신 지상에 남아 딜러가 된 경력 8년째의 허연정씨(31)는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감이 대단한 여성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남과 다른 특별한 직업을 가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딜러라는 직업은 참 안정적입니다. 전문직이고 결혼해도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고 남녀차별도 없죠.”
그러나 기자는 딜러에 대해 흔히 갖는 편견을 감추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원래부터 도박을 좋아해서 딜러가 된 건 아닌가요?”
허씨는 “저는 고스톱도 못치는데요”라고 의외의 대답을 한다.
그 옆에 있던 경력 15년째의 황규출씨(42)도 거든다.
“노름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친구들이 ‘너는 딜러니까 고스톱도 프로일 거 아니냐’면서 끼어주지도 않아요.”
카드 한두장에 몇 천만원이 왔다갔다 하는 걸 늘상 보면서도, 아니 오히려 그런 긴장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생활은 여느 직장인보다 건실하다. 카지노 업무가 끝난 뒤에도 다음날 일을 생각하면 술 한잔 마시는 것도 신경 쓰일 정도로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근무 중 가장 힘든 것은 아무래도 내내 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더 큰 고충은 카지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55세의 원로급 딜러 C씨는 “내 직업에 만족한다”면서도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걸 꺼려했다. 번듯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집안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카지노와 인연을 맺은 그는 주변의 시선이 아직도 부담스러운 듯 했다.
이들은 카지노가 최소한 ‘필요악’의 기능은 있다는 논리를 편다. 대부분 외국인을 상대로 한 카지노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온 이들은 강원랜드가 생긴 뒤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솔직히 애국하는 심정이 조금은 있었다”고 말한다.
카지노에서 무슨 ‘애국’을 찾는다는 얘긴가?
“개장하자마자 하루에 6000명 이상 몰려든 것도 그렇지만 손님 중에 숙련자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 더 놀랐어요. 그동안 외국에 나가 카지노 출입을 많이 해 봤다는 얘기죠. 그만큼 외화도 많이 뿌리고 왔을 거고요. 그렇게 해외에 나가서 쓰던 걸 이제 나라 안에서 쓸 수 있게 됐으니 외화 낭비를 막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분명 일리가 없진 않는 말이다.
●갬블러와 게이머
그러나 이 대목을 그대로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그들과 기자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고 만다.
-그런 순기능이 없진 않지만 괜히 카지노를 모르던 사람까지 도박판에 끌어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요.
“우리는 갬블러(gambler)와 게이머(gamer)를 구분합니다. 갬블러는 전문적인 도박꾼이지만 게이머는 카지노를 다른 스포츠처럼 레저 게임으로 즐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강원랜드는 그런 게이머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강원랜드 주변에는 아직 갬블러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갬블러가 되지도 못하고 돈만 날리고 있는’ 얼치기 갬블러들이 많다.
-승용차를 몰고 왔다가 차까지 저당잡히고 집에 갈 차비가 없어 쩔쩔매는 사람들을 보면서 게이머 운운하는 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 아닌가요.
“우리도 그걸 압니다. 여기 오는 손님 3명 중의 한 명은 밤을 꼬박 새우는 분들, 또 3분의 1은 날마다 오다시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도박 중독증에 걸렸다고 봐야죠.”
C씨는 그러나 “모든 사물에 햇빛과 그림자가 있듯 양면을 같이 다뤄야 한다”면서 “카지노 기계는 들어왔지만 아직 카지노 문화는 같이 들어오지 못한 과도기적 상황”으로 풀이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건전한 게이머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지금은 일종의 병목기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억눌렸던 카지노 게임 수요가 일거에 분출했지만 충분한 출구가 확보 안돼 부작용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협소한 시설이 문제라는 것이다. 가령 지금도 게임장에 한번 들어와 좌석을 차지하면 좀처럼 일어나려고 하지 않는 건 자리가 부족해 좌석을 뺏길까봐 그렇다는 말이다.
딜러들 말처럼 카지노에서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게임을 하는 사람은 앉은 고객의 3배 이상이다. 문제는 30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좌석을 서 있는 고객에게 내줘야 한다는 점이다. 앉아서 게임을 하는 사람 중엔 자리를 뺏길까봐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계속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게임이 설자리를 잃고 도박 분위기로 흐른다는 얘기다.
황씨나 허씨는 “지금 같은 분위기에선 솔직히 나도 부모님이나 친구들더러 이곳에 오라고 하기 힘들다”면서 “하지만 내년 3월에 지금 카지노보다 3배 큰 메인 카지노가 개장하고 주변 레저시설이 같이 들어서면 사정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말처럼 그렇게 시설만 확대되면 사정이 좋아질까.
하지만 그건 시설 문제만도 아니고, 또 카지노측에 달린 문제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라스베이거스에서 10분만에 100달러를 털려봤던 기자가 황씨에게 돈을 딸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이 돌아와 실망하는 기자 자신의 요행심리를 발견하면서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돈을 따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게 돈을 버는 길이다. 갖고 온 돈의 20% 범위에서 따든 잃든 과감히 그만둘 생각을 하라.”
날이 저물면서 카지노 입구 잭폿 당첨금의 숫자판의 액수도 계속 올라간다. 5700만, 6500만, 7800만원…. 번쩍이는 숫자판을 황홀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자는 이 도박 열풍이 건전한 게임문화로 바뀔 가능성과 잭폿의 확률을 생각해 보았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카지노, 게임으로 즐기려면…잃든 따든 한도액 정하고 끝난 게임은 즉시 잊어야
“대부분의 카지노는 들어가는 문은 찾기 쉬워도 나가는 문은 한두번씩 헤매다 겨우 찾는다. 분명히 나가는 문이 있는데 정작 밖으로 나가려고 출입구를 찾다 보면 돌고 돌아 제자리에 돌아오곤 한다.”
마카오 카지노 세계에서 ‘도신(賭神)’으로 불렸던 김승건씨는 10년간의 카지노 경험을 담은 책 ‘카지노 천국’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비단 출입문 뿐만 아니라 도박 자체가 입구는 있어도 출구는 찾기 힘든 속성이 있다. 강원랜드 딜러와 전문가들로부터 도박이 아닌 게임을 즐기면서 출구를 찾아나오는 비결을 들어본다.
▽카지노는 운전과 비슷〓운전할 때 2시간마다 한번씩 휴식하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쉬어가면서 하는 게 좋다. 딜러들도 40분 일하면 20분씩 쉰다. 장시간 게임은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게임의 목적은 즐기는 것〓게임의 흐름도 파악하지 못한 채 승부의 열기에 휩쓸려서는 자신을 이길 수 없다. 자신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딜러에게도 이길 수 없다. 게임 중 피로를 느끼거나 운이 닿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즉시 쉬는 게 좋다.
▽한도액을 정해놓고 하라〓잃는다면 얼마까지 감수할 것인가, 딴다면 어느 선에서 게임을 멈출 것인가 하는 가이드라인을 정해놓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과는 큰 차이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가이드 라인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다.
▽망각이 최선〓바둑의 복기는 필요하나 카지노는 그렇지 않다.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끝난 게임은 즉시 잊어버리는 게 좋다. 전에 잃었던 것을 만회할 생각으로, 혹은 전에 이겼으니 다음에도 또 이길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카지노를 찾는다면 십중팔구 실패한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