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거스르는 盧-鄭 단일화▼
누구나 느끼는 한국정치의 문제점 중 하나는 기존 정당들이 성격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진보정당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주목을 끌 만한 의미 있는 정당은 없었다. 그동안 유권자들이 이념이나 정책보다 지역에 끌려 투표를 했던 것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애초부터 그들의 선택지는 제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을 지닌 정당들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정당구도가 재편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노 후보의 등장과 민주당의 ‘뺄셈의 정치’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광복 이후의 한국정치사에서 대중성과 진보성을 겸한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점에서 노 후보는 흔치 않은 정치인 중 하나이다. 더구나 민주당 내의 온갖 철새들이 그를 흔들어대고 있을 때 그가 보여준 뺄셈의 정치에 대한 결단은 우리 정치에도 잡탕정당이 청산되고 이념과 정책면에서 순도 높은 정당이 탄생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러나 그가 ‘유권자 통합’을 내세우며 단일화에 나섬으로써 이런 기대감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소위 단일화론자들은 이번 선거를 ‘냉전수구세력 대 평화개혁세력의 대결’로 보면서, 노-정 두 후보는 뒤의 범주에 속하니 사소한 차이를 덮어두고 서로 합치자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데 정 후보가 어째서 평화개혁세력이며, 둘 간의 차이가 어떻게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더구나 노 후보는 공당(公黨)의 국민경선을 통과한 후보가 아닌가.
결국 단일화론자의 속내는 정권은 내놓기 싫고 노 후보로는 무망(無望)하니 정 후보로 단일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세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그것은 승리지상주의에 빠진 지극히 위험한 논리다. 정당한 절차나 이념적 차이는 접어두고 일단 이기고 보자는 승리물신(物神)주의는 민주주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노 후보에게 양보하라는 것은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대중성을 갖춘 상대적 진보 정당의 출현을 싹부터 자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정당의 이념과 정책에 대한 동의여부와 무관하게 이러한 맹아는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자산이다. 이번 대선으로 정치가 모두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정 후보 중심의 단일화가 지닌 퇴영(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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