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취업난 속에 입사면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은 면접 비중과 시간을 늘리는 추세다. 면접관들은 매뉴얼화 되지 않은 비장의 노하우로 무장하고 지원자들을 평가한다. 취업정보 전문업체인 리크루트가 최근 국내 매출액 100대 기업 중 86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5%가 정형화된 질문 유형 없이 면접관 재량과 경험적 판단에 따라 면접을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접은 면접관이 결과의 100%를 좌우하는 일방적인 시장이다. 그래서 지원자로서는 준비사항 수십 가지를 신경쓰는 것보다 면접관의 판단방식 한 가지를 간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피면접자 1인당 1시간가량 면접할 정도로 면접 비중이 큰 외국계 회사를 중심으로 ‘면접의 달인’들을 만났다.
●‘예스’ ‘노’보다 ‘어떻게’ ‘왜’
제약회사 ㈜한국 로슈 인사관리부 박선철 이사는 피면접자의 거짓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실을 말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없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를 모시고…’‘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자기소개서에 쓴 사람치고 평범한 가정을 못 보았다는 것이다. 박 이사는 ‘예스’ ‘노’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피면접자들에게 방법(how)과 이유(why)만을 묻고 판단한다. “전 직장에서 상사와 갈등을 겪었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직장 상사와 크고 작은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당신은 어떻게 풀었느냐?”고 한다. 대졸 신입에겐 “동아리 활동에서 친구들과의 다툼을 해결하는 데 있어 당신의 역할과 행동은 무엇이었는가?”고 묻는다. “자신에 대해 평가해 보라” 대신 “장점과 단점을 말해보라”고 한다. 인간성보다는 업무수행 능력이 우선이다. 일 위주로 10명을 뽑으면 이 중 인간성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많아야 한두 명이다. 경력사원의 경우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모임, 학교, 회사를 비난하는 사람은 박 이사의 기피대상 1호다. 그는 “‘불평 유전자’는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아이비엠㈜ 인사담당 김영규 상무는 피면접자의 ‘건전성’을 살핀다. 건전성이란 ‘문제제기만큼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그는 “대학생 때는 문제를 지적하는 역할만 해도 된다. 그러나 회사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조직”이라고 했다. 조직을 ‘벌어 먹이는’ 사람은 100개의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적인 ‘체하는’ 9명의 사람이 아니라, 1개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내는 1명이다. 전자의 성장률은 0%(또는 마이너스)이지만, 후자는 0.1%라도 된다. 김 상무가 면접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아, 지적 좋습니다. 그런데요…, 그래서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뜻입니까?”이다.
●지원자가 질문할 때 속내 드러나
오웬스코닝 아시아 패시픽 김광현 인사관리 부사장(텍사스인스트루먼트, 컴팩코리아 인사담당 상무 및 전무 역임)은 질문을 하기보다는 질문을 받는다. 김 부사장은 “인터뷰는 ‘inter’+‘view’이다. 면접시간의 절반은 지원자가 면접관에게 질문하게 한다”고 한다. 질문하는 모습에서 지원자의 면모는 더 잘 드러난다. 자신의 직책과 일에 구체적으로 어떤 비전과 위험성이 있는지를 묻거나 “맡을 업무의 실링(ceiling·한계)은 어디까지입니까” 하고 질문하는 피면접자는 우수하다고 판단한다. 이 때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하지만 잘못된 것입니다” 하면서 ‘판사’연하는 면접관은 한심한 부류다. 그는 “끊임없이 서로 묻고 대답하고, 대답하고 묻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판단에 따라 뽑지 않으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연봉에 대해 “회사방침에 따르겠다”고 무조건 충성을 표시하는 피면접자를 최악으로 본다. 김 부사장은 “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비전과 동시에 액션플랜(행동계획)이 있는지 점검한다. “5년 내에 파이넌스 매니저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업무가 끝난 저녁 시간을 이용, 세금과 원가절감을 공부하겠습니다”라는 대답에 점수를 준다. 면접관은 지원자에게 희망과 동시에 절망을 주어야 한다고 김 부사장은 설명했다. “행정직에 지원한 당신은 승진하더라도 ○○직급 이상은 어렵습니다”고 한계를 명확히 설명해야 피면접자의 ‘입사하지 않을 권리’도 존중하는 것이다. 박 이사는 “자격 요건에 비해 지나치게 넘치는 조건을 갖춘 사람을 잘라내는 것도 유능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어차피 나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국계 회사지만, 몸값만 올리며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사람은 ‘이지 플라이어(easy flier·쉽게 전직하는 사람)’라 하여 외국인 CEO들도 기피한다고 그는 전했다. 박 이사는 면접장에서 피면접자가 얼마나 면접관들을 능수능란하게 ‘꼬시고 다루느냐’에 주목한다. 갈등의 대부분은 부하가 아닌 상사와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매니지 다운’(manage down·아랫사람 다루는 것)보다는 ‘매니지 업’(manage up·윗사람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명 다국적 기업 인력개발본부 L부장은 “피면접자의 준비된 답변을 깨부수고 솔직함을 이끌어내는 게 초점”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소개서의 아버지 직업을 적는 난에 ‘택시운전사’라고 쓰면 문제가 없지만 이를 ‘운수업’이라고 표현한 경우는 인간성을 의심한다”고 말했다. L부장은 피면접자의 의례적 대답을 중지시키고 전광석화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 잠깐. 얼마 전 북한 미녀응원단들이 부산 아시안게임에 왔습니다. 그들을 고용한다면 어떤 사업을 하겠습니까”하고 묻는다. 정답은 없다. 지원자의 반응과 표정 변화를 읽는다. L부장은 “도우미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각 분점 홍보이사로 쓰겠다”는 대답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L부장은 “고통과 오르가슴은 종이 한 장 차이”라며 “면접 직후 지원자에게서 ‘합격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긴장된 반응이 피드백될 때가 가장 좋은 면접”이라고 했다. 면접관들을 뽑는 일에 전권을 행사하는 L부장은 최근 면접장에서 “우리 회사는 ∼한 인간상을 지향합니다. 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하고 질문한 상무 한 사람을 면접관에서 제외했다. 피면접자를 설득하려 했기 때문이다.
●관상 따라 적재적소가 달라진다
1990년대부터 수년간 국내 한 대기업 면접장에 면접관으로 들어가 신입사원 지원자의 관상을 보았던 사주 관상 전문가 J씨는 최근 “면접장에 관상쟁이를 들이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회사 일각의 비판에 따라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금은 회사 인사부장이 비밀리에 입사지원서를 가져와 사진을 보여준다. J씨는 사진 옆에 ‘1, 2, 3’으로 등급을 매긴다. 1등급은 ‘무조건 채용’, 2등급은 ‘채용할 경우 부서 배치에 신경’, 3등급은 ‘무조건 탈락’이다. 자신의 의견이 80%는 반영된다고 그는 전했다. J씨는 “주로 ‘반골지상(反骨之象)’을 지적한다”면서 “70%는 눈을 보고 판단한다”고 했다. 반골지상은 상사나 조직을 배신한다는 것. ‘눈꼬리가 치켜올라가고 눈 위에 흰자위가 많은 상백안(上白眼·그림)’이 대표적인 ‘3등급’이다. 눈꼬리가 쳐진 것(그림)은 ‘마음의 이중성’이 있음이고, 눈꼬리가 평평하나 검은자위가 작고 눈 한가운데 달처럼 떠있는 것(그림)은 ‘잔인한 동시에 냉철하고 이지적’일 공산이 크다고 판단해 ‘2등급’을 준다. 회사는 J씨의 조언에 따라 신입사원을 경리부 해외사업부 영업부 등 성격이 다른 부서에 배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턱이 다이아몬드처럼 각져 있거나 이마 선이 동그랗고 좁은 경우(그림) 다소 외곬일 수 있으나 개성이 뚜렷해 전문직이나 연구직에 좋다”고 조언해 인상이 썩 좋지 않은 사람을 설계 디자이너로 채용하기도 했다. J씨는 “독(毒)도 약(藥)이 되는 것 아니냐?”면서 “관상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채용의 기술”이라고 했다.
●15가지 네거티브 포인트
㈜썩세스아카데미 김원규 대표이사(전 두산산업 인사과장, 한국쓰리엠 인력개발본부장 역임)는 “면접은 회사가 원하는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 아니라, 회사가 원하지 않는 사람을 솎아내는 작업”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피면접자의 네거티브(negative·부정적인) 포인트를 점검했다. 다음 15가지에 해당되는 사람을 경험적으로 배제해 왔다.
①“일생의 꿈이 뭐냐”는 질문에 머뭇거리거나, 취직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한다
②희망 부서를 묻는 질문에 “아무 일이나 시켜주는 대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한다
③어머니 아버지 얘기를 많이 하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
냐”는 질문에 “아버지”라고 대답한다
④나중에라도 개인 사업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한다
⑤“솔직히 말씀 드려서…”하고 말한다
⑥자기소개서와 실제 대답이 다르다
⑦웃기는 질문에 웃지 않는다
⑧“공부하느라 대학 동아리 활동을 못했다”고 하는데 성적은 별로다
⑨이성(異性)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⑩“네,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는 등 군대 티를 벗지 못했다
⑪노조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말하거나 노조 활동을 원색적으로 비난한다(이런 사람은 ‘막무가내’ 노조 집행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노조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노조다)
⑫“이젠 거꾸로 아무 질문이나 해 보라”고 했더니 “토요일에 노느냐”고 묻는다
⑬솔직한 태도라고 생각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⑭약혼식 예복처럼 차려입는다(1,2년 회사를 다닌 사람처럼 편안한 정장이 자연스럽다)
⑮돈 많은 사람을 비난한다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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