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주말시대/여행]영화 '전망좋은 방'의 이탈리아 피렌체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바다의 신, 넵튠의 분수./사진제공 캠프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아름다운 아리아인 ‘어떤 갠

날’. 그 느린 선율의 낭만적인 노래가 영화 ‘전망좋은 방’(A Room With A View ·1986년 작)의 도입부에 흐른다.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가며 읽는 소설 같은 이 영화의 전반부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촬영됐다. 이 영화로 86년 아카데미 각색 미술 의상상 등을 수상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유럽의 정서를 담담히 전달할 줄 아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다. 누군가에게 피렌체를 설명하고자 할 때 이 영화보다 더 도발적인 촉매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는 애정을 갖고 피렌체에 렌즈를 들이댔다.

명문가 출신의 영국 처녀 루시(헬레나 본 햄 카터 분)와 사촌언니인 독신녀 샬롯. 두 사람은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 주변의 여행자용 펜션 베르톨리니 펜시오네에 짐을 푼다. 기대감에 부풀어 객실 창문을 열어젖히지만 어디 한 곳 매력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서 실망해버린다. 그런 주인공의 고민을 자청해서 해결해 준 사람들은 같은 펜션에 묵는 영국인 에머슨 부자였다. 아들이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과묵하되 열정적인 청년 조지(줄리안 샌즈 분)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여느 여행자들처럼 평범하게 시작되었지만 루시가 혼자서 피렌체 관광을 시작하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맡게 된다.

●피렌체, 꽃의 도시

어느 나라든 여행을 하다 보면 비슷한 도시 형성 과정을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강을 끼고 발달이 이루어지고, 모스크나 성당 같은 종교적 구심점을 중심으로 발달한다. 이탈리아도 그 전형적인 예다. 대부분 성당인 두오모(Duomo, 라틴어로 교회인 Domus에서 유래)와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종교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구심점이 되고 번화한 거리는 회오리를 치듯 바깥으로 사람들을 확산시킨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주도(州都)인 피렌체 역시 예외는 아니다. 피렌체는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233㎞ 떨어져 있다. 피렌체에선 도시 어디에서 길을 잃어도 골목길 사이로 두오모의 붉은 지붕을 목표로 걸음을 옮기면 곧 중심 광장에 다다를 수 있다. 도시의 모든 길은 두오모로 통한다. 그래서 피렌체 어느 곳에서 머무르든 여행의 출발은 언제나 두오모, 즉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꽃의 산타마리아 대성당)이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에서 보아오던 그것과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밀라노의 두오모는 대표적인 고딕양식의 뾰족한 첨탑들이 하늘을 찌를 듯 위풍당당한 자태를 드러내고,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병풍을 치듯 열을 지어 바티칸을 끌어안고 있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그런 성당들에서 느껴지는 위엄과는 정반대의 느낌이다. 흰색과 초록색, 분홍색 등의 파스텔톤 대리석을 차곡차곡 포개어 쌓아 놓은 그 부드럽고 화려한 기운은 엄숙하고 근엄한 신의 공간을 보다 인간적이고 친밀감 있는 곳으로 느끼게 해준다.

영화에서 영국인 부자의 양보로 짐을 옮기게 된 루시의 방에서 바라다보이는 멋진 전망은 바로 이 두오모의 쿠폴라(둥근지붕)가 보이는 풍경이다. 우뚝 솟은 두오모와 다른 집들의 빛 바랜 오렌지색 지붕이 연이어 펼쳐지는 피렌체의 풍경은 그대로 그림엽서의 한 장면처럼 여주인공의 심상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피렌체가 아름다운 까닭은 도시가 선사하는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유럽 문명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던 르네상스시대에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비롯한 미술가들, 단테 보카치오 등의 문학가, 마키아벨리같은 정치가까지 각 분야의 천재들을 배출해낸 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천재들이 한 도시에서 탄생할 수 있었는지 새삼 놀라울 정도지만 피렌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피렌체는 세계 최초로 오페라가 공연된 도시다. 가장 아름다운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도시이고, 근대 정치와 경제의 기본을 확립한 도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피렌체를 ‘꽃의 도시(체타 델 피오레)’로 부른다. 피렌체인은 피오렌티나(여성형)와 피오렌티노(남성형)로 불린다. 피렌체와 관계된 대부분의 말은 언제나 꽃(피오레)이 중심이 된다. 피렌체의 영어이름은 플로렌스(Florence). 모두 라틴어로 꽃(Flore)에서 유래했다.

피렌체의 상징화는 백합으로 이 지역의 가문들 문장엔 백합이 그려져 있다. 꽃과 예술을 사랑한 피렌체인들. 르네상스가 이곳에서 출발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산타 크로체 교회와 시뇨리아 광장

객실 창 밖에 펼쳐진 전망에 마음이 흔들린 여주인공 루시는 혼자서 도시관광에 나선다. 첫 번째 방문지로 선택한 산타 크로체 교회(Santa Croce)를 지나 걸음을 옮긴 곳은 시뇨리아 광장이다.

사실, 역사적인 유적과 아름다운 작품들만으로는 교회가 더 주인공에게 반향을 일으킬 만하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교회엔 피렌체와 연고가 있는 천재들의 무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로시니, 조르지오 바사리 등 무려 276기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내부 장식도 여러 예술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도나텔로의 ‘수태고지’와 ‘십자가’를 비롯, 프레스코화로 유명한 지오토의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도 남아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이 찾고자 하는 것은 그런 정체된 유적과 유물이 아닌, 살아있는 어떤 것이었다. 바로 피렌체가 전달하는 열정적이고 로맨틱한 느낌. 피렌체가 속한 토스카나 지방의 사람들은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도 ‘다혈질’로 꼽힌다. 감독이 이 피렌체의 열정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상징은 시뇨리아 광장에서 일단의 청년들이 벌이는 극렬한 싸움이었다.

시뇨리아 광장은 예로부터 피렌체 행정의 중심지. 공화정을 모토로 했던 피렌체인이 곳곳에 모여 토론을 벌이고, 거수투표로 정책을 결정했던 곳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에게는 베키오 궁전과 많은 조각들이 늘어선 야외 미술관으로 더 유명하다. 광장에 선 복제품 다비드상과 넵튠의 분수는 그 자체가 훌륭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곳에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피렌체의 젊은 남자들은 여주인공 루시가 쳐다보는 앞에서 싸움을 벌였고 그 끝에 한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난생 처음 목격한 그 충격적이고 생생한 장면 때문에 기절한 그녀를 안아 안정을 취하게 해준 사람은 바로 조지였다. 그 후 토스카나 지방의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펼쳐진 영화의 다음 장면은 피크닉신이었고 그곳에서 둘은 열정적인 키스를 하게된다.

루시는 영국으로 돌아가지만 피렌체에서 경험한 일련의 회상들은 모자이크처럼 루시의 영혼을 채우게 된다. 그래서 루시는 피렌체를 벗어났어도 다시는 그 이전의 루시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피렌체가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로마나 유럽의 다른 대도시에서 피렌체까지는 유레일패스를 이용, 기차를 선택해 이동하는 것이 편리하고 낭만도 있다. 이탈리아 관광청(02-775-8806·www.enit.it)

2. 피렌체의 전망 좋은 방

두오모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유서 깊은 럭셔리호텔, 헬베티아 브리스톨(thecharminghotels.com에서 항목검색)을 추천할 만하다. 특히 제일 높은 층의 객실에서는 창을 열면 영화 속에서처럼 두오모의 둥근 지붕을 내다볼 수 있다. 호텔 주위엔 프라다와 구치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 숍들이 몰려 있어 상점들을 구경하며 가볍게 오후 산책을 즐길 수 있다.

3. 피렌체를 무대로 한 다른 영화들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1996) 니콜 키드먼, 존 말코비치 출연.

여자들의 테이블(Speriamo che sia femmina·1985) 리브 울만, 카트린 드뇌브.

천사의 시(Incompresso·1967) 앤서니 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