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역 캐스팅 가수 비

  • 입력 2002년 11월 21일 17시 31분


4월 ‘나쁜 남자’로 데뷔해 단시일만에 인기 정상에 오른 가수 비 (20·본명 정지훈)의 이미지는 야누스적이다. 소리 없이 웃는 미소년의 얼굴, 큰 키(184cm)에 근육질의 섹시함이 한 몸에 결합된 그를 두고, 한 영화 제작자는 “합성체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전설적 무술인 최배달(본명 최영의·1922∼1994)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바람의 파이터’ 주연에 발탁된 뒤, 충무로에서는 “비가 최배달을?” “절묘한 캐스팅”이라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이 영화의 양윤호 감독은 “비가 춤꾼이라 ‘몸 맛’을 알고, 유단자의 ‘교육받은’ 몸짓대신 싸움꾼의 거친 리듬이 몸에 은근히 배어있는 점을 높이 샀다”고 캐스팅 배경을 설명한다. 원작자인 만화가 방학기씨도 “최배달은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싸움을 두려워하던 싸움의 신이었다. 새로운 최배달의 이미지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하고 있다는 귀띔이다.20일 만난 비는 덜 자란 아이의 얼굴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단단한 청년의 인상이다. 사진촬영 전, “어떤 컨셉트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자세 잡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하고 묻는 얼굴에는 ‘무슨 일이든 허술하게 하지 않겠다’는 다부짐이 배어 있다. 스스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만화 '바람의 파이터'에서 최배달 캐릭터

인기가 치솟은 뒤 영화 출연 제안을 꽤 받았지만 “대부분 비련의 멜로라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부산에서 공연마치고 올라오다 차안에 있던 ‘바람의 파이터’ 시나리오를 그냥 읽기 시작했는데 점점 빠져들었다. 치욕까지 포함해 희노애락이 다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매니저에게 “이거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그냥 노래만 하지 그래”. 그래도 “잊혀지지가 않아서 ‘일단 시나리오를 읽어본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집요하게 졸랐다”고 말한다.

“데뷔한지 1년도 안됐고 겨우 앨범 하나 낸 가수가 무슨 영화냐고 안좋게 보시는 분들도 많을 거다. 하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 때 해볼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늘 많지는 않을테니까.”

비는 “최배달 선생님의 극진 가라데는 실전에서 목숨을 거는 싸움이다. 준비되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각오하고 있다”며 “1월에 본격 트레이닝을 시작하면 가수 활동도 접고 영화만 할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한다.

“안양예고의 ‘짱’이었다면서?”하고 묻자 민망해하며 “싸움을 매일 한 건 아니지만 한 번 하면 물러서진 않았다. …지는 게 싫다”고 대답한다. ‘저 얼굴에 무슨 독기가 있다고…’하던 생각이 서서히 사라진다.

“진영이 형(가수 박진영) 백댄서를 하며 가수 훈련을 받을 때, 형이 ‘노래를 그렇게 못하면서 네가 무슨 가수냐’고 혼낼 만큼 노래를 정말 못했다. 오기가 생겨 미친 사람처럼 매달렸다. 한 번은 버스 뒷좌석에서 이어폰으로 음악 들으며 혼자 안무를 짜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툭툭 치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학생, 간질 있어?’하고 묻기도 했다.노래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라이브는 꿈도 못꿨는데, 요즘은 ‘안녕이란 말 대신’ ‘악수’를 부를 때 립싱크를 한 적이 없다.”

2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뜬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자 “엄마한테 ‘내가 돈벌면 예쁜 주방 꾸며줄게’했는데…”하면서 얼굴에 그늘이 진다. 그러나 비가 자신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는 것을 듣다보면, 그 후 마음의 키는 한 뼘 더 자란 것 같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만은 못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내가 예쁘고 잘 생긴 얼굴은 아니다. 예전엔 초라했다. 지금 모습은 이미지를 그렇게 만들어서 생긴 거다. 아무리 멋지게 나와도 그걸 나 자신과 혼동하면 안된다고 늘 생각한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비의 말말말

"잘 할 생각 없으면 시작하지도 않는다." 영화에 도전하는 가수 비의 각오가 다부지다.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액션 영화들을 보다보니 눈빛에도 액션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눈빛 액션을 제일 잘하는 배우는 설경구 아저씨 같다. 나는 눈이 착하게 생겼다고 해서 일부러 험한 생각도 하고, 애를 써보는데 걱정이다.

△태어나서 처음 운 영화는 ‘파이란’이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최민식 아저씨가 부둣가에서 우는 장면을 보고 울었다. 어떻게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는지… 살벌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갑자기 ‘떠서’ 너무 정신이 없다. 다 잘해주니까 누가 좋고 나쁜 사람인지 분간을 못하겠다.

△내 꿈은 ‘삶의 부자’가 되는 것이다. 가수 데뷔로 첫 번째 계단을 올랐고 영화는 두 번째, 2집을 내는 게 세 번째 계단이다. 20년 뒤?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입고 싶은 옷들이 있는데 잘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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