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년 동안 미국인들은 스타워즈로 대표되는 SF영화에 열광해왔다. SF는 기술이 인류를 사이버 유토피아로 이끌 것이라는 집단적 믿음을 충실히 반영해왔다.
그러나 밀레니엄을 거치면서 ‘레이저가 아닌 칼’, ‘전자가 아닌 마법’,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 ‘미래가 아닌 과거’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2001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는 나란히 박스 오피스 1, 2위를 차지했다. 올해 개봉된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은 개봉 첫주에만 8800만달러(약 1066억원)를 벌어들였다.
판타지 영화와 함께 온라인 판타지 게임 시장도 번성하고 있다. 첨단의 상징이었던 SF가 20세기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타임은 분석했다.
비비언 소브책 UCLA TV-영화학과 교수는 “전쟁과 환경 파괴 등 기술 진보의 부작용에 염증을 느낀 현대인들은 판타지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며 “그 종착역이 판타지”라고 설명했다.
평화적이고 목가적인 가치를 숭상하는 이들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첨단 기술자본의 상징인 영화제작자들에게 떼돈을 벌어주고 있다. 해리 포터의 제작사인 워너 브러더스와 반지의 제왕 제작사인 뉴라인 시네마는 후속편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고 다른 영화사들도 판타지 영화에 줄지어 손을 대고 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에서 보듯 무기를 서로 찔러대는 등 남성주의적 편향을 보이거나 여성이나 유색인종은 찾기 힘든 점, 계급주의와 선악의 이분법 등 지나친 단순논리는 경계해야 한다고 타임은 지적했다.
반지의 제왕 주인공 프로도가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나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욕심 없는 젊은이라는 것도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준다. 영화는 미국에도 교훈을 준다고 잡지는 덧붙였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미국은 전지전능한 반지를 가지고 있고, 때문에 미국이 져야 할 짐은 주인공 프로도만큼이나 무겁다는 것이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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