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 칼럼]정책 중심의 이념논쟁을

  • 입력 2002년 11월 27일 18시 12분


제16대 대통령선거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양자대결 구도가 되면서 선거 쟁점도 분명해졌다. 이 후보의 ‘부패정권 교체론’과 노 후보의 ‘새 정치 구현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두 후보의 선거전략은 각기 상대방에게 가장 파괴력이 강한 ‘무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채택된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자칫하면 이번 대선에서도 정책대결이 소홀해지거나 아예 실종될 우려가 있다.

▼달라진 정국 노선대결 불가피▼

왜냐하면 ‘김대중정권 심판론’과 ‘낡은 정치 교체론’이라는 상반된 두 후보의 전략이 결국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두 후보간에 이념적 지향과 정책노선, 그리고 지지계층과 지지세대에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이번 대선이 정책대결이 아닌, 네거티브 전략으로 시종(始終)될 우려가 있다. 부패정권 교체론도 필요하고, 낡은 정치 교체론도 필요하겠지만 정책대결 없는 선거판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민주당측은 이번 대선이 ‘보수 대 진보’의 대결구도가 되는 것을 꺼린 나머지 이념논쟁을 극력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책을 놓고 공방을 벌이자면 이념과 노선의 문제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노 후보는 스스로 “민주당이나 나는 진보노선으로 가려는 게 아니다”라고 자신의 ‘급진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 내 ‘좌파’로 분류된 노 후보는 그의 노선이 당의 공식적인 ‘중도개혁’ 노선과 맞지 않다고 반노(反盧)파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이것이 탈당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의 선거공조를 위해 정책조율을 해야 한다. 이런 사실들은 모두 이념과 노선 문제에 직결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6·13지방선거에서 전국 평균 8.1%를 득표한 민주노동당 후보가 이번에 이 ·노 두 후보와 나란히 TV 토론에 참여할 예정이어서 이번 대선이 과거 보수정당 일색의 선거판과 달라진 점 역시 이념논쟁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모든 후보는 자기의 이념과 노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21세기 한국의 새 정치를 위해서다. 다만 이념논쟁은 어디까지나 정책 중심의 건전한 대결이 되어야 한다.

현 정권 들어 벌어진 이념공방은 주로 한나라당과 정부 여당간, 그리고 같은 민주당의 노 후보와 이인제 고문간에 행해졌다. 정부의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야당측으로부터 ‘좌파적 정권’ 또는 ‘노동당 제2중대’라는 거센 비난이 나오고, 노 후보에 대해서는 ‘급진세력’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 여당측은 한나라당을 ‘냉전 극우세력’이라고 반격함으로써 이른바 ‘색깔공세’와 ‘역(逆)색깔공세’가 교환된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한나라당을 ‘냉전 수구세력’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대선도 ‘평화 개혁세력 대 냉전 수구세력의 대결’이므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후자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이분법적 색깔론은 과거의 이념공방과 전혀 다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으로 국내 민심이 불안한 상황에서 국민을 분열시키고 북한의 심리전에 역이용될 소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색깔론은 도움안돼▼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을 둘러싼 공방은 대북 평화정책 자체에 관한 찬반이 아니라 그 방법론을 둘러싼 견해차에 불과하다. 대북 평화정책 자체는 이미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이래 역대 정권이 꾸준히 추구해 온 정책이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조건 없는 교류와 경제지원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자는 것인 데 비해 한나라당의 입장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교류와 경제협력만이 북한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 다르다.

이런 차이를 놓고 서로가 상대방을 ‘친북 좌경세력’이니 ‘냉전 기득권세력’이니 하고 비난하는 행태는 대북 정책을 둘러싼 건전한 정책공방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각 후보들이 집권 청사진을 놓고 서로 겨루려면 건전한 이념공방을 포함한 각 분야의 정책대결이 있어야 한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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