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부터 5∼10년 동안 연애해 온 동갑내기 또는 연상녀-연하남 커플들이 줄줄이 헤어져 버렸다. 그래서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결혼 청첩장이 사무실 책상 위로 배달돼 오는 날이면 괜한 안도감마저 느낀다.
최근 헤어진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이별 모습은 그들이 쌓아온 세월에 비하면 너무도 허망해 듣는 사람을 난감하게 만든다.
“군대에 가 있는 남자친구가 주말마다 저를 만나러 서울에 왔어요. 하루는 그가 전화를 걸어와 ‘귀찮아서 서울에 가기 싫다’고 하더군요. 전 ‘그래, 그러면 앞으로도 올 필요 없어’라고 했어요. 그게 바로 끝이었어요.”
“남자친구와 백화점으로 쇼핑을 갔어요. 그는 본래 쇼핑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날 따라 유독 짜증을 많이 냈어요. 나와 결혼해 살면 피곤한 남자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어요. 백화점에서 언쟁을 벌이고 집으로 돌아온 후 그를 다시는 만나지 않았어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편화하면서 동갑내기 또는 연상녀-연하남 커플 중 여자는 커리어우먼, 남자는 아직 학생이거나 군 복무 중인 경우가 많다.
이때 남자가 안이한 자세로 연애를 할 경우 여자로부터 ‘차일’ 확률이 높다. 이미 안정된 직업을 가진 여자 주위에는 남자친구보다 매너 좋고 조건 좋은 남자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이별을 통고 받는 남자 입장에서야 헤어짐의 순간이 억울하고 황당무계하겠지만 그것은 그동안의 관계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불만의 표출점일 뿐이다. 의리와 사랑의 이름으로 수입 없는 남자친구에게 밥 사주고, 영화 보여주는 일도 계속 반복되면 스트레스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혼전 섹스가 남녀 관계를 꽁꽁 묶어 놓는다는 생각은 요즘 커플들의 의식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연하의 남자친구와 6년간의 연애 끝에 이별한 20대 여자는 말했다.
“수년째 계속돼 온 남자친구와의 섹스에서 더 이상 흥미를 못 느껴요. 마치 전화를 걸어 밥 뭐 먹었느냐고 묻는 것 말고는 할 말이 더 이상 없어진 것처럼….”
동갑내기 커플의 갈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대 후반의 한 여자는 최근 동갑인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이미 외국 대학원으로 유학을 다녀와 활발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와 달리 그녀의 남자친구는 내년 외국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여자는 △제1안:남자친구와 결혼한 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남자와 함께 외국에 가는 것 △제2안:남자친구와 결혼해 남자만 외국 유학을 가고 자신은 국내에서 직장생활을 계속 하는 것 △제3안:남자친구가 유학을 다녀올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것 등 여러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이다. 그녀에게 미혼인 친구들은 제2안을, 기혼인 친구들은 제3안을 권하고 있다. 결혼한 친구들은 오래된 관계는 뜻하지 않은 외부 유혹에 쉽게 무너진다고 경고한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무미건조한 관계는 열정이 사라진 부부 관계와 비슷한 점이 많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면밀하게 상대방의 취향을 관찰하고 배려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다가 그의 낯선 모습에 부닥치게 되면 완충 효과를 낼 장치가 없어 충격이 크게 나타난다.
●이별한 연인들을 위한 겨울 제언
1.재즈 피아니스트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앨범 ‘솔로 라이브(Solo Live)’ 중 ‘루킹 업(Looking Up)’, 키스 재럿의 앨범 ‘마이 송(My Song)’ 중 ‘마이 송’을 듣기를 권한다. 겨울에 듣는 재즈 피아노곡은 그 느낌이 여느 계절보다 맑게 다가온다.
2.남극 대륙 횡단에 나선 영국인 어니스트 섀클턴의 생존 드라마를 소개한 책 ‘인듀어런스’처럼 인간의 강인한 집념을 저술한 책을 읽는다.
3.화려하고 섹시한 속옷을 입어 기분을 전환한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위한 겨울 제언
1.골프 연습장에서 함께 골프 기술을 연마한다. 남녀가 함께 즐기는 스포츠가 섹스뿐이라면 그 관계는 금세 싫증 난다. 스포츠는 사랑과 우정을 공고히 한다.
2.‘곰브리치 서양미술사’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건축의 역사’와 같은 두꺼운 분량의 책을 함께 공부함으로써 역사와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기른다.
3.그동안 옷처럼 실용적인 선물을 서로 주고받았다면 로맨틱한 선물로 바꿔본다. 여자에게는 꽃 또는 나비 모양의 보석 브로치나 크리마스 시즌 한정품으로 판매되는 황금색 용기의 화장품을, 남자에게는 색상이 화려한 전기 면도기나 올리비아 허시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 DVD를 선물한다.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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