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회계사는 97년 한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지금의 회사에서 근무해 오다 지난해 11월 AICPA 시험에도 합격했다. 4월에 시험을 위한 강의를 듣기 시작해 일곱달 만에 네 과목을 모두 합격했다.
보통 사람들은 한국 공인회계사 자격 하나를 따기도 어려운데 AICPA 자격까지 가지고 싶었던 이유는 무얼까.
“연세대 경제학과(91학번)에 다닐 때 기독교 동아리에서 선교사들을 접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미국에서 직업 생활을 해 보고 싶고 회계 전문가가 된 이상 AICPA 자격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00년 데이콤이 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과정에 회계관련 업무를 맡았는데 미국 회계를 잘 몰라 고생을 했던 경험은 마음을 굳힌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회사측이 강사를 불러 강의를 개설하는 등 시험공부를 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일반인보다는 유리한 조건 가운데 하나다.
꼭 미국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AICPA 자격이 주는 장점은 더 많다. 회계사 수가 점점 더 늘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AICPA 자격이 있는 회계사들은 직장을 옮길 때 더 좋은 대접을 받는다.
“고객에게서 미국 회계와 관련된 업무를 맡는데 유리하고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 고객인 기업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AICPA 자격증은 그야 말로 자격증이고 실무는 훨씬 어렵다”며 “지금도 현지의 미국변호사들에게 자문하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김 회계사가 시험에 합격한 것은 97년. 외환위기가 터진 해다. 외환위기 직전까지는 회계법인들이 일손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회계법인들이 감원을 하는 바람에 시험에 합격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공인회계사들이 늘었다.
경제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 경제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기업들의 회계부정을 막지 못하거나 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공인회계사들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났다.
김 회계사는 “외환위기 이후 회계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면서 회계사들의 업무 강도나 책임의 정도는 높아졌지만 기업들의 회계 관행과 업계 구조는 그만큼 달라지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입사 후 쉽지 않은 업무와 공부에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알찬 가정을 꾸려왔다는 것이 늘 마음 뿌듯하다고. 주말이면 모교에 나가 후배들에게 선교를 하는 것이 낙이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LG카드 CRM2팀 양수자씨▼
올 6월 LG카드 신입사원 모집 광고를 보고 한 이색 지원자가 문을 두드렸다.
여성, 24세, 서울대 통계학과 졸업, 공부 1년 만에 미국 공인회계사(AICPA)시험 합격.
이 지원자의 가능성에 주목한 회사는 고용을 결정했고 주인공 양수자씨는 현재 CRM2팀에서 일하고 있다.
양씨는 AICPA 자격과는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 CRM은 고객들의 과거 자료를 분석해 고객 특성에 기초한 마케팅 활동을 계획하고 지원하는 ‘고객관계관리’를 말한다. 양씨의 표현에 따르면 “회원을 알아주는” 마케팅 활동을 이른다.
양씨는 그러나 “내가 선택한 진로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97학번으로 대학교 4학년 때까지 통계학과 자연과학에 묻혀 살았던 양씨는 졸업한 뒤 금융회사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기업활동과 경영 회계 등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수단으로 AICPA 자격증을 선택했습니다. 실제로 상법이나 세법, 회계 등 시험을 준비하며 배운 지식들은 경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학부과정을 한 학기 남기고 2000년 가을 휴학한 양씨는 학원과 집을 오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1년이 채 안된 지난해 5월, 그야말로 ‘시험삼아’ 본 시험에 덜컥 합격한 것.
처음에는 영어 원서로 된 교재의 양이 너무 방대해 걱정도 많이 했지만 학원 강사들의 체계적인 가이드를 받으며 이내 적응할 수 있었다.
양씨는 “시험을 준비하며 얻은 경영지식을 이용해 지금 하고 있는 CRM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생활비를 제외하고 공부와 시험에 들어간 비용은 대략 700만∼800만원 정도. 지원할 때는 자격증이 주는 이익과 비용을 따져봐야 한다고 양씨는 조언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자격증 따려면…▼
미국 공인회계사(AICPA)는 한국에서 단독 개업은 못하지만 1999년부터 국내 회계법인에 취업해 회계감사 국제조세 및 경영컨설팅 분야에서 한국 공인회계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근무할 수 있다. 또 기업 업무 전반에 대한 지원활동과 증권 투자분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AICPA가 되기 위한 시험은 미국 현지에서 매년 두 번(5, 11월)치러진다. 응시 조건이 주마다 다르고 시험일로부터 6개월 전에 조건이 완비돼야 한다.
시험은 재무회계 회계감사 상법 세법 및 관리회계 등으로 구성되는데 범위가 방대해 보통 12과목으로 나눠 시험을 준비한다.
이제부터 시험을 준비하려는 사람은 2004년부터 시험제도가 전면적으로 바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종이 시험지가 사라지고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는 CBT방식이 도입된다. 이에 따라 과목 구성이 파트별로 재편되고 출제비중도 다소 달라진다.
‘Business Environment & Concepts’라는 부문이 새로 도입되고 기존 지문선택형 문제 이외에 사례 연구와 유사한 개념의 ‘시뮬레이션’ 문제도 출제된다. 컴퓨터로 영어를 쓸 수 있어야 하고 엑셀 등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반면 응시 기회는 한 해 4번으로 늘어난다.
최 보 선 LUCA Business School 대표 luca@luc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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