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쏴아, 파도소리가 귀를 스칩니다. 요즘 저는, 두 세기 전 남해 바닷가에 서 있던 한 사내의 모습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누명을 쓰고 쫓겨온 유배지엔 쓰러져 가는 초가 수십채. 모처럼 세속의 번잡을 잊고 학문에 전념하고자 하였으나 책 한 권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터입니다.
그런 처지에서 그가 시작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닷가에서 대하는 뭇 물고기며 조개, 온갖 바다 생물의 형태와 습성 등 특징을 기록으로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정약전의 ‘현산어보(玆山魚譜)’를 읽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현산어보’란 국사시간에 ‘자산어보’라는 이름으로 배운 그 책입니다.
새 책에서는 한 젊은 생물학자가 200년 전 정약전의 자취와 그의 책에 기록된 생물들의 오늘날 모습을 찾아갑니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박물학자’의 발자취를 되짚어본 여정의 기록이랄까요.
옛 책 속에 묘사된 물고기와 현실의 펄펄 뛰는 고기를 겹쳐보이면서, 저자는 선인의 기록이 주는 매력에 푹 빠져 있군요. 숭어 고둥 새우 성게…. 정약전이 기록한 날치잡이의 풍경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눈앞에 비늘이 흩날리고 신선한 비린내가 풍겨오는 듯하다”며 탄복을 금치 못합니다.
기록 자체에만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파리의 형상을 수제비에 비유한 부분을 인용하며, 저자는 수제비 그릇을 놓고 앉은 옛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고 미소짓습니다. 이를테면 정약전이라는 인물 자체에 흠뻑 매혹된 듯합니다.
그럴 법합니다. 흑산도에 있던 정약전이 우이도로 가려 하자, 흑산도 백성들이 길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럴 정도라면, 후학이 그의 인품에 반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저자는 무엇보다 정약전이 남긴 사상의 선진성, 시대를 초월한 실용성에 탄복합니다. 그의 동생 정약용마저도, ‘윤리의 실현’에 학문의 효용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정약전은 한층 현실주의적인 학문관(觀)을 가졌다는 설명, 저자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약전은 동생인 약용을 몇 발 앞서는 인물이 되는군요. 한참 떨어진 장에서 저자는 “(당시) 윤리를 향한 지나친 목적성이 과학 발전을 저해했다”고 꼬집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이 책의 배경에 흐르는 정서는 ‘아쉬움’입니다. 당시 일본의 서민들은 확대경을 들고 다니며 옷에 미생물 무늬를 그려 넣었습니다. 유럽에서는 50여종 이상의 원소가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정약전은 ‘서양학설’인 4원소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매장당할 뻔했습니다. 확대경을 사용했다면 ‘현산어보’는 어떤 모습이 됐을까. 저자의 물음입니다.
우울한 얘기가 되었나요, 화제를 돌려보죠. 저자의 눈길이 당대 조선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관통하고 있음은 얘기 드린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닿는 지평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익의 ‘성호사설’을 얘기하면서 서양의 백과전서파를 언급하는 것이야 새로울 것이 없다 할지라도 뱀장어의 발생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을 언급하고, 청어를 얘기하며 ‘하멜 표류기’에 언급된 한국 네덜란드의 청어를 끌어들이는 데 이르면 저자의 ‘지적 용량’이 쉽게 어림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거시성과 함께 ‘말미잘’을 ‘석항호(石肛D), 홍미주알’로 기록한 ‘자산어보’ 원문을 보며 ‘미주알〓항문이므로 말미잘〓말×구멍이구나!’라며 무릎 치는 미시성이 공존한다는 것, 이 책을 권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매력이라고 할까요.
걱정이 없는 바도 아닙니다. 이미 나온 책이 1200쪽 분량, 앞으로도 두 권이 더 나올 예정이므로 여간 시간을 들여야 할 일이 아니지요.
아, 잊을 뻔 했군요. 왜 ‘현산’어보일까요. 저자는 정약용과 교류가 있었던 유암(柳菴)이 흑산도를 ‘현주’라고 불렀다는 점을 듭니다. 형제는 ‘흑산’이라는 말이 어둡다 하여 검을 현(玄)자가 나란히 붙은 ‘玆’자를 사용했고, 이를 역시 ‘현’이라 발음했으리라는 추론입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