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모크라시의 제국-미국 전쟁 현대세계/후지와라 기이치 지음/이와나미 신서 2002년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는 작년 9월 11일 ‘동시다발 테러’이후에 보인 미국의 강경자세다. 특히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공중 폭격을 마치 정당하고 정의로운 전쟁처럼 자리매김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와 이를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미국의 세론을 저자는 미국이 ‘제국’화돼 가는 뚜렷한 징표로 파악한 것이다.
어떤 나라를 일컬어 ‘제국’이라고 부를 때에는, 그 나라를 비난하고 단죄하는 울림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후지와라기이치도 미국의 ‘제국화’에는 비판적이다. 그러나 그는 ‘제국’이라는 개념을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현실을 분석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감정적이며 과잉된 ‘반미’의식을 조장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냉정한 논의와 해박한 지견, 그리고 비판정신이 잘 어우러진 알찬 책이다.
미국은 예전의 대영제국 등과 달리 해외의 영토 획득에 그다지 탐욕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해외 지배권 확대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주권 국가인 외국 정부를 스스로 자기세력하에 들어오게 하도록 하는 힘을 비축해 왔다. 더군다나 냉전체제가 붕괴된 뒤에는 세력권을 전 세계로 펼쳐 갈 가능성마저 짙어지고 있다.
그런데 외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나 전쟁에 대해 미국만큼 과민하게 이데올로기적인 의미 부여를 하는 나라도 없다.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행한 군사 작전에 대해서도 당초에는 ‘한없는 정의’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였다. 이것은 바로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세계에 펼쳐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는 미국의 모든 군사적 개입이 ‘데모크라시’라는 미명하에 정당화되고 만다. 빌클린턴 정권까지는 비록 명목상이라고는 할지언정 ‘국제협조정신’이라는 것은 지켜 왔다. 그러나 부시 정권은 그것마저 가볍게 던져 버리고,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미국 일국의 단독 행위 원칙을 관철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일방적으로 미국 비판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에서 그는, 미국의 ‘제국화’로 인해 헌신짝처럼 버려진 지역이 생겼는데,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해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그 영향하에 있는 유럽과 아시아도 전혀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현실에 더욱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그 지역이란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를 포함한 ‘제3세계’이다. 저자는 ‘미국 등 큰 나라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도 르완다 내전이나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처럼 분쟁은 그대로 방치된 채’인 현실에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미국화로 파악하고,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내셔널한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는 논의가 부쩍 많아졌다. 후지와라씨는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그 같은 ‘반미 내셔널리즘’에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간 아프리카나 팔레스타인의 많은 사람들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이들에게 무관심했던 것이 미국뿐이었는지, 우리들 자신도 공범자는 아니었는지를 냉철하게 한번 돌아볼 일이다.
이 연 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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