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봅시다]에릭 닐슨 사장 vs 장병우 사장

  • 입력 2002년 12월 8일 17시 41분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에릭 닐슨 사장(왼쪽)과 LG오티스 장병우 사장이 만나 ‘한국식 러브샷’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다. - 전영한기자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에릭 닐슨 사장(왼쪽)과 LG오티스 장병우 사장이 만나 ‘한국식 러브샷’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다. - 전영한기자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직원들이 하소연하더라고요. 대출을 하려는데 은행에서 볼보가 뭐냐고 묻는다는 겁니다. 삼성중공업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죠….”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에릭 닐슨(Eric Nielsen) 사장이 처음 한국에서 마주쳤던 충격을 얘기하자 LG오티스 장병우(張炳宇) 사장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맞습니다. 한국에선 돈보다 가족이나 동료, 친구 등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LG에서 일하던 우리 직원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지난달 27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내 한 한식집. 국내 대표적인 두 다국적기업의 CEO가 자리를 같이 했다.》

LG오티스는 99년 엘리베이터 업계 세계 1위인 미국 오티스(OTIS)와 국내 1위인 LG가 합작해 설립한 회사.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스웨덴 볼보가 98년 삼성중공업의 중장비사업 부문을 인수해 전 세계 볼보 굴착기 사업 중심기지로 거듭난 회사다.

두 CEO는 덕담부터 나눴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무역의 날 기념 금탑산업훈장 및 3억달러 수출탑, 노동부 주관 안전경영대상 중공업 부문 대상 등 6개의 훈장 표창을 받게 된 데다 LG오티스도 전문건설업체 중 안전활동 최우수기업으로 노동부장관상을 수상하는 한편 엘리베이터 부문이 산업자원부 선정 차세대 일류상품에 뽑혔기 때문에 덕담의 소재는 풍성했다. 대화는 영어로 진행됐다.

▽새로운 도전〓덕담이 오간 후 식사에 맥주 한잔을 곁들이면서 두 사람은 ‘러브 샷’을 나눴다. 장 사장이 폭탄주 얘기를 꺼냈다.

“직원들과 폭탄주도 하면서 한국 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다면서요?”(웃음)

“노력은 하는데 성과가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에릭 사장이 폭탄주에 적응하려 하는 것처럼 우리가 오티스와 합작하면서 경험한 가장 큰 변화는 다른 윤리와 가치체계에 적응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이 틀린 게 아니라 서구와 다를 뿐이죠. 다국적기업은 세계 어디를 가든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직원뿐 아니라 부품업체와 고객, 주주들까지도 우리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장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국 다국적기업이 명심해야 할 것은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Global+Localization)입니다. 생각은 글로벌리(Globally), 행동은 로컬리(Locally)…. 이것을 실제로 해 내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자 에릭 사장이 한국에서 볼보가 겪은 시행착오를 털어놨다.

“회의 때 상급자의 의견이 언제나 정당한 것으로 결론이 나는 것을 보고 이러한 서열 관계가 비즈니스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장, 과장 등 직급 타이틀을 없앴죠. 하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타이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어요. 지금은 모두가 만족하는 방법을 찾아냈죠. 직급 타이틀을 유지하되 태스크포스팀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 과장이라도 사안에 따라 최적임자라면 팀장으로 임명해 부장이나 차장들을 지휘해 일을 완수하는 거죠.”

▽우리는 한국 회사〓외국기업이 한국기업을 사냥한 게 아니냐는 주제가 나오자 대화는 열기를 띠었다.

장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흔히 우리의 이윤을 다국적기업이 다 가져간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면도 봐야 합니다. 볼보코리아만 해도 삼성 시절 사업의 70%가 내수 시장에 있었다면 이제는 볼보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70%를 수출하고 있죠. LG오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오티스 내 5대 연구소 중 하나인 창원연구소가 세계 각 지역 연구진과 최고의 기술을 공동개발한 후 이를 국내 실정에 맞게 국산화합니다. 물론 생산된 제품은 수출합니다. 최신 기술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웁니다. 회사뿐 아니라 한국 입장에서도 잃을 게 없죠.”

에릭 사장이 맞장구를 쳤다. “부언하자면 한국 내 외국 회사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울러 우리는 한국 내 부품업체 수준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에 더 이익이 되는 것이죠.”두 CEO는 이어 기업 윤리와 안전, 환경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장 사장은 특히 안전은 리더십이라며 엘리베이터 보수관리 부분에 대한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제도 개선 및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어는 생존 무기〓다시 가벼운 주제로 넘어가면서 장 사장이 궁금한 듯 물었다. “경영 전략 회의 때 어떤 언어를 씁니까.”

“(웃으며) 영어로 하고 있습니다. 다국적기업에서는 영어를 잘하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더 많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해외 볼보사로 파견한 직원이 벌써 25명가량 됩니다.”

“맞습니다.저는 임원 미팅 때 보고서를 영어로 만들든지, 발표를 영어로 하든지, 가능하면 두 가지 다 영어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직원들에게는 인센티브 시스템도 마련해 토익 730점 이상이면 매달 일정액의 보너스를 주고 있습니다.”

오랜 대화 끝에 두 CEO는 술 얘기로 자리를 정리했다.

“다음엔 포장마차에서 소주로 만납시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에릭 닐슨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사장

△1959년 미국 출생

△미시간공대 기계공학,

시카고대 경영학 석사

△94년 볼보건설기계그룹 정보 시 스템 부사장→98년 볼보건설기 계코리아 재무담당 부사장→ 2000년 7월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사장

△좌우명: 할 수 있다는 사람이나 없다는 사람이나 둘 다 맞다.(Th ose who say they can, those w ho say they can’t. Both are right.)

△취미: 모터사이클

□장병우 LG오티스 사장

△1946년 평남 남포 출생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91년 LG전자 미국 현지법인 세 일즈·마케팅 담당→95년 LG상 사 생활기기그룹 전무→97년 L G산전 빌딩사업본부 부사장→ 99년 LG오티스 대표이사

△좌우명:우보(又步·흐르는 물이 썩지 않듯 쉼 없이 걸으면서 일 하면 권태와 정체가 없다).

△취미: 골프, 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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