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교의 농구에세이]허재, 아버지를 위하여…

  • 입력 2002년 12월 9일 17시 56분


지난 일요일 TG 엑써스와 SK 나이츠의 잠실경기.

허재(TG)는 체력안배를 위해 1쿼터 내내 벤치를 지켰다. 여느 시즌과는 달리 허리를 곧추세우고 머리를 길게 빼고 두 손은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 놓은 채 마치 면접을 보러온 신입생처럼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후배들의 경기를 좀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보기 위함이다. 박수를 잘 치지 않던 그가 1쿼터에 박수를 두 번이나 쳤다. 김승기의 굿 패스와 연이은 레이업이 성공했을 때다. 이런 변화된 모습에서 올 시즌 허재의 우승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다.

돌이켜 보면 허재만큼 우승을 많이 해본 현역선수도 없으리라. 97년 5월1일 당시 기아(현 모비스 오토몬스)소속이던 허재는 현 소속팀인 TG(당시 나래)를 꺾고 프로에서도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정작 허재 본인은 이를 자신의 우승으로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당시 코칭스태프와의 불화가 정점에 이르렀던 그는 우승 헹가래를 치던 순간에도 벤치에 그대로 앉아 옆 동료와 의미없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승 축포가 터지자 그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혼자서 체육관을 떠났다. 그런 허재가 지금 진정으로 우승을 원하고 있다. 그가 이번 시즌에 우승해야 하는 첫째 이유다.

또 있다.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은 아들은 없겠지만 허재에게 아버지 허준(72)옹은 그 이상이다. 허옹은 개성과 근성이 남다른 아들을 조율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들의 경기 때면 늘 관중석에 앉아 있었던 허옹은 지난 5년 간 거의 경기장을 찾지 못했다. 대장암 수술을 받은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가 올 시즌 원주 개막전에 손자들 손을 잡고 정말 오랜만에 아들의 경기를 보러 왔다. 아버지의 건강 회복이라는 큰 선물을 받은 허재가 펄펄 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지난 시즌 허옹은 불편한 몸으로 TV를 통해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경기가 끝난 뒤 전화로 “그걸 경기라고 해”라며 호통을 치곤 했다. 그처럼 엄한 아버지가 올해는 “농구 잘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허재는 그런 아버지에게 우승컵을 안겨 드리고 싶은 것이다.

원래 허재는 소문난 효자다.

방송인·hansun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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