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자본가 출신 국민통합21의 정몽준(MJ) 대표와 민주당의 프로 정치가 노무현 후보간의 단일화가 난항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두 사람은 ‘등뒤로 문이 잠긴’ 밀실회담 딱 한 번으로 단일화에 전격 합의하고 ‘러브 샷’을 이뤄냈다. 물론 ‘출구’를 나온 정 대표가 그 후 여론조사와 그 결과에 대한 승복 과정에서 몇 차례 심정변화를 일으키긴 했지만 두 정당은 마침내 선거 공조의 길에 들어서는 모양이다.
▼단일화 내주고 공동정부 얻어▼
MJ가 누구인가. 그는 재벌의 상징인 고 정주영씨의 아들로 수천억원짜리 회사를 (‘생각까지 대신해줄 정도’로 막강한 임원진과 함께) 물려받았지만 스스로는 별로 이룬 것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지고도 오늘날 ‘노 후보가 당선되면 정부를 공동책임질 동반자’의 위치에 당당히 오른 것은 감탄할 일이다. 더구나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기 위해 2004년에 개헌한다’고 합의했던 두 사람이 어느새 정권 시작부터 5년간 국정운영을 함께 책임지기로 했다니 MJ는 전투에서 지고도 전쟁에서 이기는 놀라운 ‘상술’을 발휘한 셈이다.
국가운영에서 ‘공동 책임’이란 말은 당연히 국정 집행상 권력의 공유를 의미한다. 두 사람이 어느 분야에서 얼마만큼 권력을 나눠 가질지는 아직 모른다. 2원집정제의 형식이라면 두 사람간의 권력 분포는 ‘한시적으로 작은 지분을 동반자에게 나눠주는 데 그쳤던’ 김대중대통령 정권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정권이 이렇게 산술적으로 반분되는 상황은 노 후보에게 권력을 몰아주려는 지지자들 입장에선 김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노 후보는 최근 유세에서 “나 보고 외교를 모른다고 하지만 세계를 잘 알고 많은 외교인맥을 가진 정 대표와 손을 잡았으니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외교 국방 남북문제는 한 줄기인데 MJ에게 외교를 맡기겠다는 것은 “남북대화만 성공하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 나머지는 대강해도 괜찮다”고 말할 정도로 남북문제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던 노 후보로서는 중대한 양보를 한 셈이다.
노 후보와 정 대표간의 권력분점이 ‘쌍두의 독수리’가 될지 ‘2인3각(二人三脚)’이 될지는 모른다. 쌍두체제일 경우 그동안 대북문제와 대미관계 그리고 경제분야에서 극명하게 대조적 입장에 있던 두 사람의 머리는 마주 본 채 서로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말할 수도 있다. 정치판처럼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지개색처럼 변하며 춤을 추는 곳이라면 그들의 방언은 때에 따라 ‘통역’조차 불가능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정권이 한목소리로 대외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만일 2인3각의 모습이 된다면, 숨가쁘게 변하는 세계화시대에서 과연 순발력 있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MJ는 단일화협상 전에 “나는 이념적으로 이회창 후보와 더 가까운 사람이다. 왜 노 후보와의 단일화만 얘기하는가”라며 노, 정간의 이념적 괴리를 인정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노 후보의 성(城)에 ‘공동 성주(城主)’로 들어가게 되는지는 모른다. 물론 뭉치고 헤어지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이념이나 노선이 다르다고 비판하지만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인들이 그런 걸 따져가며 지조 있게 모이고 흩어진 적은 별로 없지 않은가.
▼정책추진 한목소리 가능한가▼
정치인들의 권력욕에는 질릴 만큼의 풍요라는 게 없다. 두 정당이 단합해서 정권을 잡는다 해도 양쪽 정치인들이 쉽게 욕망의 포만감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5년간 DJ 정권을 통해 보아왔다. 노 후보가 집권할 경우 과연 정 대표가 지금처럼 뛰어난 상술을 발휘해 ‘갑과 을의 관계’에서 계속 갑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군말을 없애려면 두 정당은 권력 나누기에 대해 지금쯤 미리 세부내용을 계약할 필요가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필요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규민 논설위원 실장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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