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여전사의 매력이 터프함 속의 섹시함에 있듯 콘디의 마력도 모순의 변증법에서 비롯된다. 뉴스위크 최신호가 그 막강한 영향력을 ‘조용한 힘’이라고 표현한 대로다. 콘디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할 만큼 강경외교 정책의 전도사이면서도 백악관에서 회의가 끝나면 커피잔 정리까지 한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같이 치우자고 했다가 “남자는 그런 거 안한다”는 대꾸에 “진짜 남자는 할 수 있다”고 되받기도 했다. 남자보다 더 남자다우면서도 여성다움을 잃지 않는, 그리하여 남녀 구분의 잣대까지 뛰어넘는 일면이다. 노예와 노예 소유주의 후손으로 흑인 최초의 안보보좌관직에 오른 그는 “흑인들이 노예제도에 대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말로 피부빛과 과거의 굴레에 묶이지 않음을 보여준 적도 있다.
▷자신을 한계 속에 가두지 않으니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건 당연한 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불가능한 상황은 없다고 믿는 것처럼 콘디 역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종교적인 낙관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하고 아름다운 콘디의 괴력은 보좌역으로서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 데서 발휘된다. 무엇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가장 먼저 고려하는 지적 애국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부시 대통령을 사적인 견해로 흔드는 법이 없다. 그런 콘디가 영웅적 전사이자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공주로 자리잡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공주’로 만족할지 모르지만 콘디가 언제까지 부왕의 사랑 속에 행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화 속 주인공이 참된 영웅으로 거듭나려면 아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살부(殺父) 의식을 거쳐야 하듯, 전사 공주 역시 참된 전사로 다시 태어나려면 집을 떠나 무기를 들어야 한다. “전쟁과 축구는 닮았다”며 언젠가 미식축구연맹회장이 되고 싶다는 말로 자신의 전투욕과 권력욕을 슬쩍 눙쳤던 콘디. 2008년 대선에 나와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우뚝 설지 지켜보는 것도 컴퓨터게임 못지 않게 흥미진진할 듯싶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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