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지도자는 균형 있는 사고를 지녀야 한다. 역사와 사회를 편향되지 않고 넓고 균형 잡힌 눈으로 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역사에서 ‘민초(民草)’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고, ‘민심이 천심’인 것도 맞다. 그러나 역사가 민초의 힘만으로 발전해 왔다고 보는 것은 ‘외눈박이 역사관’이다. 지도자를 잘못 만났을 때 그 희생을 온전히 민초가 뒤집어써야 함을 우리는 북한의 예에서 잘 보고 있다. 민초를 떠난 지도자는 공허하지만 바른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민초는 맹목적이 될 수밖에 없음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외눈이 아니라 두 눈으로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지도자를 골라야 한다.
참된 지도자는 반드시 민주주의의 신봉자여야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스트여서는 곤란하다. 민주주의의 신봉자가 반드시 포퓰리스트여야 할 이유는 없다. 진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사람이라면, 대중민주주의의 약점도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시저가 여론에만 의존했다면 아마도 루비콘 강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지도자에게는 ‘고독’하게 내려야 할 결단이 있다. 비록 그것이 시류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거시적인 안목으로 사태를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이 지도자에게는 요구된다. 그 결단은 당시에는 고독할지라도 시간이 보상해 주리라고 믿는 신념이 지도자에게는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안목과 결단력을 지닌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참된 지도자는 책임질 줄 아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민주주의는 책임정치이고, 책임에 대한 평가는 선거를 통해 이루어진다. 집권당은 자신이 책임졌던 기간에 대해 국민의 채점을 받고, 여타 당은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차기의 책임을 맡겨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선거다. 이 같은 정당정치의 원칙을 저버리고 ‘당 따로 후보 따로’ 노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그럴 경우 지난 5년은 누가 책임지며, 국민은 어디서 그 책임을 물을 것인가. 지금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은 나중에도 책임을 회피하려 들 것이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여기가 책임의 종점’(해리 트루먼 전 미 대통령)이라고 선언할 정도의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참된 지도자는 절제의 미덕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개인의 정직과 도덕성, 솔직하고 소탈한 성품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자기 권력의 힘을 인식하고 그 힘을 자제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지도자는 ‘마음 속에 내재된 권력제어장치’(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 대사)를 지녀야 하고, 그것을 주변 사람에게 강요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난 10년과 같은 주변집단에 의한 권력 발호가 방지될 것이다.
참된 지도자는 어른이 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어른이 없다는 점이다. 어른의 지위는 자연연령 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어느 한 방향으로 편향되게 갈 때 과감하게 떨치고 나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어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어른 역할을 할 지도자다. 사회가 급속하게 고령화로 치닫고 있는데도 어른을 무시하는 것은 사회의 발전방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며, 역경 속에서 국가를 건설하고 발전시킨 세대에 대한 모독이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노-장-청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노인의 경륜과 장년의 원숙함과 청년의 패기가 어우러질 때 사회는 안정 속에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파파 스머프’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어린이 애니메이션 영화 ‘개구쟁이 스머프’에 나오는 스머프 마을의 ‘어른’으로 지혜와 경륜의 상징이다. 아마도 우리가 찾는 참된 지도자의 상이 가장 잘 구현된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번 선거는 파파 스머프를 찾는 게임이 될 것 같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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