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실망시켜온 ´제왕´ 행태▼
이번 대통령선거는 그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 선거과정을 대권경쟁, 대권레이스와 같이 대권을 거머쥐기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표현함으로써 스스로 전통적 관념에 젖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관념을 넘어 현실과 제도 또한 그러하다는 데 있다. 대권이란 대통령의 권한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멀게는 군주의 절대권력 지상권력에, 가깝게는 제1, 2차 세계대전 전후 이른바 위기정부시대의 대통령이나 총리의 비상대권 독재권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건국 전후, 개발연대의 후진국 지도자들이 국가위기를 부추겨가며 즐겨 차용하였고 우리에게도 그것은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잔재는 뿌리깊게 남아 있다.
헌법은 대통령이 형식적으로는 국가를 대표하되 실질적으로는 행정권의 수반에 그칠 것을 지향하며 여러 견제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미흡할 뿐 아니라 그나마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대권적 모습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 대통령의 권한을 둘러보자. 100조원의 예산, 100만 공무원, 60만 대군에 국가정보원 검찰청 국세청 경찰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를 거느린 막강의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거기에 실질적으로 틀어쥐고 있는 정당을 통한 국회 지배가 추가된다. 대통령의 의중이 절대 반영된 당론을 빌미로 국회의원을 거수기로 만들고 입법부를 ‘통법부’로 전락시키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대법관 전원, 헌법재판관 다수의 임명권으로 사법부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무제한의 사면권을 행사하면서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판결문을 휴지화하기도 한다. 위기정부의 비상대권이 부러울 것 없을 정도다.
이런 수준의 대권은 더 이상 곤란하다는 것이 국민적 합의임은 분명하다. 유력 대통령후보들도 앞다투어 대권, 당권 분리를 공약하고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공언하며 사면권 행사 남용 금지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는 것도 그 권한 자체의 축소가 선행될 때에 비로소 제 뜻이 산다는 점은 강조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지방자치, 교육자치의 실질화 같은 과감한 권한 이양조치의 실현이다. 중앙에서 돈과 사람을 움켜쥐고 사실상 북향 재배를 강요하고 있다면 변화는 요원하다.
▼과감한 권한이양 실천을▼
그리고 국회와 법원의 정부통제권 강화가 필수적이다. 추상적인 대권, 당권 분리론을 떠나 대권의 축소와 비견되는 당권의 축소가 이루어져야 한다. 비대해진 중앙당을 대폭 축소하고 그에 종속된 국회를 본 모습으로 되돌려야 한다. 법조 출신 후보마저 이상하게 침묵하고 있지만 사법부 구성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 법관추천회의나 법관선거제 같은 제도적 장치가 신설되어야 하며 자의적인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는 입법조치도 있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이 격렬한 대권경쟁에서 승리하는 순간 천하라도 얻은 것 같으리라. 아니 바로 그 천하를 얻었음을 실감하게 되리라. 그러나 바로 그 득의의 순간 그는 모든 유혹을 다 뿌리치고 스스로의 권한을 축소하는 제도 신설을 발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신설 이전이라도 대권 절약형 대통령으로 겸허하게 나타나라. 국민은 소권(小權)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박인제 변호사·객원논설위원 ijpark2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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